전체메뉴
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
<210> 부필, 북송 인·영·신종대 명재상 |2019. 12.10

부필(富弼, 1004~1083)의 자는 언국(彦國)으로 낙양 출신이다. 북송 인종, 영종, 신종 때의 명재상이다. 일찍이 범중엄이 그를 보고 “제왕을 보좌할 인재다”라고 칭찬했다. 인종 8년(1030) 무재(茂才)로 천거되어 장락감승, 직집현원, 지간원 등의 관직을 제수받았다. 경력 2년(1042) 지제고가 되어 거란에 사신으로 가 세폐를 늘리는 조건으로…

<209> 인종 북송 4대 황제…왕조 전성기 구가 |2019. 12.03

인종(仁宗, 1010~1063)의 이름은 조정으로 북송의 4대 황제다. 중앙집권 체제가 안정되는 등 북송 왕조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진종의 여섯째 아들로 후궁 이씨 소생이다. 그의 생모가 꿈에 신선이 하늘로부터 하강하자 진종이 그대가 내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종의 정실인 유황후는 애를 낳을 수 없자 그를 자신의 아들로 키…

<208> 범중엄, 북송 인종때 명신…개혁정책 앞장 |2019. 12.06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자는 희문(希文)이며 소주 오현 사람이다. 북송 인종때의 명신이다. 대중상부 8년(1015년) 진사과에 급제했다. 급제 이후 흥화현령, 비각교리, 진주통판, 소주지주를 역임했다. 직언을 자주해 여러 차례 관직에서 배척되었다. 1040년 한기와 함께 섬서경략안무초토부사가 되어 둔전구수(屯田久守) 정책을 실시해 북서쪽 …

<207> 여이간, 북송 인종때 명재상…왕조 안정 기여 |2019. 11.19

여이간(呂夷簡, 978~1044)의 자는 탄부(坦夫)이며 현 안후이성 봉대에 해당하는 회남로 수주 출신이다. 북송 인종때의 명재상으로 왕조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대대로 관료를 역임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 여몽령은 광록사승과 대리사승을 지냈다. 백부 여몽정은 태조와 태종 밑에서 3번이나 재상을 역임한 거물이었다. 진종이 아들 가운데 중용할만한 인물…

<206> 진종 북송의 3대 황제…문치주의 확립 |2019. 11.12

진종(眞宗, 968~1022)은 북송의 3대 황제로 문치주의를 확립하고 과거제도를 정착시켰다. 요나라와 전연의 맹약을 맺어 약 40년간 화평을 이루었다. 968년 12월 태종의 3남으로 태어났다. 태종의 장자도 아니고 모친도 황후가 아닌 까닭에 황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없었다. 맏형이 폐위되고 둘째 형이 돌연 사망하는 바람에 황태자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총…

<205> 왕흠약 북송 진종·인종때 재상…대표적 간신 |2019. 11.05

왕흠약(王欽若, 962~1025)의 자는 정국(定國)이며 현재의 강서성 신연에 해당하는 신유 출신이다. 북송 진종과 인종때 두 번 재상을 역임한 대표적 간신이다. 순화 3년(992년) 진사 갑과에 합격해 공직에 나아갔다. 교서랑, 태상승, 좌간의대부, 참지정사, 형부시랑 등을 역임하였다. 1001년 부재상인 참지정사가 되었다. 경덕 원년(1004년) 요의…

<204> 구준, 북송 태종·진종때 강직한 충신 |2019. 10.29

구준(寇準, 961~1023)의 자는 중평(中平)이며 현 섬서성 위남에 해당하는 화주 하방 출신이다. 태종, 진종 때의 명신이다. 태평흥국 5년 (980년) 진사에 합격했다. 귀주 파동과 성안의 지현에 임명되었다. 989년 태종에게 상주문을 올렸다. 태종이 화를 내고 내궁으로 들어가려하자 황제의 옷자락을 잡고 끝까지 들어줄 것을 간청했다. 태종은 “내가 …

<203> 왕단 북송 과거제도 개혁한 명재상 |2019. 10.22

왕단(王旦, 957~1017)의 자는 자명(子明)이며 현재 산둥성 랴오칭시에 해당하는 대명 신현 출신이다. 북송 진종때 재상을 지낸 청렴한 명신이었다. 대신 왕호의 아들로 새벽에 출생한 까닭에 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얼굴과 코가 비뚤어지고 목줄기가 튀어나와 외모가 변변치 않았다. 어린 시절 화산에 사는 도사가 그의 관상을 보고 “후일 크게 귀해질 상”이…

<202> 이항 송 태종과 진종때의 명신 |2019. 10.15

이항(李沆, 947~1004)은 현재 허베이성 한단시 페이샹현에 해당하는 명주 비향 출신이다. 자는 태초이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송 태종과 진종때의 명신이다. 이병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말이 적고 도량이 컸다. 태평흥국 5년(980) 진사 갑과에 합격해 관직에 나아갔다. 태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우찬선대부와 사서편찬직인 …

<201> 여몽정 북송 왕조 구축에 공헌한 명재상 |2019. 10.08

여몽정(呂蒙正, 944~1011)의 자는 성공(聖功)이며 하남성 낙양 출신이다. 북송 태조와 태종때 3번에 걸쳐 재상을 역임하며 왕조 기반 구축에 기여했다. 977년 진사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해 공직에 나갔다. 장작감승, 승주통판에 임명되었다. 태종에게 지방으로 가기 전 고별인사를 하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말을 타고와 직보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20만냥을 …

<200> 조보 태조 조광윤 도와 북송 건국에 공헌 |2019. 10.01

조보(趙普, 922~992)의 자는 칙평으로 유주 계현 사람이다. 태조 조광윤을 도와 북송 건국에 공헌했다. 태종 조광의때도 두 차례 재상을 지내 왕조의 기틀을 공고히 하였다. 조광윤이 후주의 군관으로 활약할 때 인연을 맺었다. 후주의 세종 시영이 천하통일 사업의 일환으로 남당을 공격할 때 조광윤의 부친 조홍은도 출정했는데 과로로 사망하였다. 군사판관으로…

<199> 송 태종 979년 당나라 이어 중국 재통일 |2019. 09.24

조광의(趙匡義, 939~997)는 북송의 2대 황제로 묘호는 태종이다. 송태조 조광윤의 친동생으로 북송의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979년 당나라에 이어 중국을 재통일했다. 무관 조홍은과 두씨 사이에 태어났고 송태조 조광윤의 실제(?弟)다. 조광윤이 후한과 후주의 군관으로 활약하는 동안 충실히 형을 보좌했다. 960년 조광윤이 개봉의 외곽인 진교에서 송의 황…

<198> 범질 오대 후주부터 북송 초기까지 재상 역임 |2019. 09.16

 범질(范質, 911~964)의 자는 문소이며 현 하북성 형태시 위현에 해당하는 대명종성 출신이다. 오대 후주부터 북송 초기까지 재상을 역임했다. 북송 초기 정치 안정에 기여했다.  부친 범수이는 하남성 정주방어판관을 역임했다. 범질이 태어난 날 저녁 무렵 모친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신선을 만나 오색 붓을 받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글 읽는 것을 즐겨하…

<197> 조광윤 당 이후 첫 통일 왕조, 북송 초대 황제 |2019. 09.10

조광윤(趙匡胤, 927~976)은 하북성 탁주 고양현 출신으로 북송의 초대 황제다. 묘호는 태조로, 당 왕조 이후 새로운 통일 왕조를 수립했다. 부친은 조홍은으로 오대 십국때 후당의 금군 장교다. 형제들이 요절해 사실상 장남 역할을 수행했다. 940년 군에 들어가 후한의 장군 곽위의 막료가 되었다. 951년 곽위가 후주(後周)를 건국하자 개국 공신이 되었…

<196> 야율대석 요 태조 8대손, 중앙아시아에 서요 건국 |2019. 09.03

야율대석(耶律大石, 1087~1143)의 자는 중덕이고 묘호는 덕종이다. 요나라 태조 야율아보기의 8대 손이다. 요나라가 금나라에 복속되자 중앙아시아로 서진해 서요(西遼) 왕조를 세웠다. 천조제(天祚帝)는 요의 마지막 황제다. 8대 황제 도종의 황태손으로 1101년 도종이 죽자 황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요왕조는 오랜 정쟁으로 거의 붕괴 직전이었다. 사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