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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그림생각'
김은영의 '그림생각' (142) 설국 |2016. 01.28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소설의 첫 문장만으로도 기억 속에 오래도록 새겨질 가와바다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설국’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품 속 배경을 직접 가보기 전까진 “같은 일본 땅일 텐데 ‘국경의 긴 터널…’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김은영의 '그림생각' (141) 옛 풍경 |2016. 01.21

딸아이와 즐겨보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함께 시청하면서 모처럼 세대 공감을 느꼈다. 30여 년 전 유행했던 가수 김창완의 ‘청춘’이나 이문세의 ‘소녀’ 를 함께 따라 부르면서였다. 서로 “어떻게 이 노래를 아느냐?”며 놀라워했다. 청춘이 떠나갈까 안타까워하며 ‘청춘’의 노래를 부르던 때야말로 푸르던 청춘이었음을 그때는 몰랐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

김은영의 '그림생각' (140) 사다리 |2016. 01.14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언어는 그 자체로 우리들 삶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다. 지난 해에 이어 새해 벽두부터 언론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헬조선’ 혹은 ‘수저론’이다. 희망을 기약할 수 없는 청춘들의 좌절이 투영된 단어다. 그런 상황에서도 한 점의 그림에서 잠시…

김은영의 '그림생각' (139) 플란더즈의 개 |2015. 12.24

미션 스쿨인 여고에 다니면서 어느 해 성탄절을 앞두고 친한 친구 전도로 교회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성가대 지휘를 하는 교회 오빠를 좋아했었다. 당시 여학생들에게 ‘교회 오빠’는 로망이었다. 성탄절 즈음의 축제와 같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또 마음에 둘 ‘교회 오빠’가 없어서였을까. 나의 신앙은 더 이상 자라지 못했고,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

김은영의 '그림생각' (138) 복면 |2015. 12.10

최근 ‘복면 금지법’을 둘러싼 대립으로 복면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이 기록되고 감시당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복면을 쓴다는 것은 이런 감시로부터 벗어나려는 소극적인 방어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고 얼굴을 감추는 익명성 대신 과감한 표현의 자유를 얻으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나…

김은영의 '그림생각' (137) 조용필 콘서트 |2015. 12.03

“내 영혼이 떠나간 뒤에/행복한 너는 나를 잊어도/어느 순간 홀로인 듯한/쓸쓸함이 찾아올 거야//바람이 불어오면 귀 기울여봐/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 갔느니/착한 당신 외로워도/바람 소리라 생각하지 마…”〈조용필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중에서〉 생각해 보면, 살면서 나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거나 스스로를 위해 선물한 …

김은영의 '그림생각' (136) 역사 |2015. 11.19

역사학자들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역사의 반복성’을 든다. 오늘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의 선례는 이미 지나간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많기에 역사를 교훈 삼아 미리 대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노동개혁, 청년 실업과 빈부 문제 해결을 외치는 시위 등을 보아도 ‘반복하는 역사’를 떠올리…

김은영의 '그림생각' (135) 하늘을 걷는 남자 |2015. 11.12

한 시간을 달콤하게 보내려면 아이스크림을, 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한편의 영화를, 일주일을 산뜻하게 누리려면 이발을 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게 영화 한편은, 어떤 경우엔 한 달 이상 그 감흥이 지속되기도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감독·로버트 저메키스)가 그럴 것 같다. 무모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한 한 남자의 끝없는 도전을 보…

김은영의 '그림생각' (134) 기원 |2015. 11.05

지난 주말 친구 따라 교회 바자회에 다녀왔다. 팥죽과 수제 돈가스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찐빵과 꽈배기튀김은 후식, 두 손엔 김치 등 먹을거리를 바리바리 들고 나서니 잔치 집 마실 다녀온 듯 마냥 즐거웠다. 내 마음 속 종교는 따로 있지만, 신앙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언제부턴가 교회 법당 성당 그 어느 곳엘 가도 똑같이 마음이 편안하다. 절로 마음모…

김은영의 '그림생각' (133) 피아노 |2015. 10.29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폴란드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이 내내 화제다.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하고 쇼팽 콩쿠르를 준비했다는 조성진씨의 인터뷰를 접하면서 오래전 보았던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가 동시에 겹쳐진다. 영화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

김은영의 '그림생각' (132) 멘디니 |2015. 10.22

“…/허리가 아프니까/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사는 게 별거냐/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이정록 작 ‘의자’중에서〉 허리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어느 곳에서든 의자를 만나면 한번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신세지는 가구가 의자이기 때문…

김은영의 '그림생각' (131) 적벽 |2015. 10.15

얼마 전, 화순 적벽에 다녀왔다. ‘조선 10경’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경치가 뛰어나다는 화순 적벽이 개방된 지 꼭 1년만이었던 것 같다. 뜻밖에도 험하고 굽이도는 산길이어서 심한 버스멀미로 조금 고생스러웠지만 화순 적벽은 말 그대로 비경이었다. 넘실거리는 호수, 7km에 이르는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절벽, 과연 중국 양쯔강의 적벽과 비견되어 이름 붙여질…

김은영의 '그림생각' (130) 가을 |2015. 10.08

“가을이구나!/…/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가을, 원수 같은. //나는 이를 깨물며/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너에게 살의를 느낀다/가을이여, 원수 같은.” 〈정현종 작 ‘가을, 원수 같은’ 중에서〉 가을날이 얼마나 사무치게 좋았으면 고문, 살의, 원수와 같은 역설의 단어를 추려냈을까? 감정을 간수하지 않아도 되는 시인…

김은영의 '그림생각' (129) 발레 |2015. 10.01

지난 주, 광주시립발레단이 공연한 ‘차이콥스키, 그가 사랑한 발레’를 관람했다. 고전 발레답게 남녀 무용수들의 화려한 동작과 특히 발레리노의 중력을 거스르는 힘찬 도약 등 멋진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그간 여성 무용수의 보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발레리노에 대한 나의 편견이 깨지면서 고난도의 테크닉에 더욱 열광했던 것 같다. 사실 무용사에서 발레는 남성…

김은영의 '그림생각' (128) 가을 안개 |2015. 09.24

“안개 속을 걷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덤불과 돌은 모두 외롭고/수목들도 보이지 않는다/모두가 혼자이다/…/안개 속을 걷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살아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모두가 혼자이다”〈헤르만 헤세 작 ‘안개 속에서’중에서〉 아침 출근길, 안개가 자욱해서 가을 안에 들어와 있음이 느껴진다. 안개 낀 날이면 지금도 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