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아시아문화 원류를 찾아서
<90> 뿌리 깊은 농경문화 속 권선징악 전설 우리와 비슷 |2019. 10.04

[네팔=글 박기웅·사진 김진수 기자] “한 끼만 줍쇼….” 네팔 포카라 지역 한 마을에 허름한 차림의 한 남성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돌아다녔다. 옷은 헤졌고,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남루한 차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구걸하고 다니는 거지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쫓아버렸다. 얼마나 많은 집을 돌아다녔을까. 그 거지는 구걸이…

<89> 삶과 죽음의 경계…화장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다 |2019. 09.20

[네팔=글 박기웅^사진 김진수 기자] 바람을 타고 온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을 따라 올라갈수록 그 향은 더 짙어졌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었다.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함께 뿌옇게 피어 오른 연기가 무심하게 흩어졌다. 강 건너 맞은 편에서 본 한 망자는 언뜻 집안의 가장 어른으로 보였다. 금송화(금빛을 띤 꽃)를 덮고 있는 망자를 딸인 듯한 여인이…

<88>‘채이트 다샤인’ 축제때 염소·닭 神에 바치며 소원 빌어 |2019. 08.16

[네팔 포카라 = 글 박기웅·사진 김진수 기자] 향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향 연기가 사원을 뿌옇게 메웠다. 사원을 찾은 사람들 손에는 저마다 신에게 올릴 공물이 들려 있었다. 차례차례 순서를 기다리며 신전 앞에 길게 줄을 섰다. 그들 사이에는 닭이나 어린 염소, 오리를 품에 안은 사람도 더러 보였다. 경건한 사람들의 표정과…

<87> 왕실 보호하는 ‘탈레주’ 분신이자 살아있는 여신 |2019. 08.02

“아니, 어찌 이런 곳까지 오셨습니까.” 네팔 말라 왕조(1201∼1769)의 마지막 왕이었던 자야 프라카쉬 말라(Jaya Prakash Malla) 왕은 무릎을 꿇었다. 주사위 놀이를 즐겼던 왕은 어느 날 밤 갑작스레 붉은 뱀과 함께 그의 처소를 방문한 미모의 여성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 여성이 바로 왕실을 보호해주는 여신 ‘탈레주’(Taleju)였…

<86> 시바의 전설이 흐르는 곳…수많은 순례자들의 성지 |2019. 07.19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 히말라야산맥 카일라시(Kailashi) 산에 살고 있던 파괴의 신 ‘시바’(Shiva)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카일라시 산이 싫증난 데다, 신이라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몰래 궁을 빠져나온 시바는 네팔 카트만두(Kathmandu) 현 파슈파티나트(Pashupatinath)…

<85> 식인귀 → 삼신할매로 변화시킨 ‘역지사지’ 석가의 가르침 |2019. 07.05

히말라야산맥 아래 지금의 카트만두 분지는 원래 호수였다. 수 만년전 이 호수에 연꽃 하나가 피어났다. 그리고 연꽃 위에 불교에서 섬기는 부처 중 하나인 대일여래(大日如來)가 나타났다. 이 소식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문수보살(文殊菩薩)의 귀에 들어갔다. 문수보살은 대일여래를 경배하기 위해 호수를 찾아왔다. 하지만 호수에 도착한 문수보살은 대일여래를…

<84> 경쟁하듯 세워진 화려한 사원…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2019. 06.18

네팔은 오랫동안 왕정국가를 유지했다. 2008년 5월 28일 왕조의 군주제를 철폐하고 ‘네팔 연방 민주공화국’으로 재탄생 하기 전까지 국왕이 존재한 왕정국가였다. 수천년을 이어온 왕정국가 체제는 네팔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네팔만의 독보적이고 화려한 건축문화를 뿌리내리게 한 왕조가 있었으니 바로 말라(Malla) 왕조다. 네팔…

<83> 신년축제 ‘비스카 자트라’ 120여 민족 공동체 의식 다지다 |2019. 05.30

먼 옛날 네팔의 도시 박타푸르(Bhaktapur)에 있었던 한 나라의 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공주때문이다. 빼어난 미모로 절세미녀라 불리던 공주는 단 하루도 남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왕의 근심은 딸의 음탕함 때문이 아니었다. 공주와 잠자리를 한 남자들 모두 다음날이면 목숨을 잃었다는 게 문제였다. 왕위를 물려…

네팔 음식과 술 |2019. 05.23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는 벼(쌀)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감자를 비롯해 옥수수와 조, 수수, 무 등을 재배했으며, 평야지대에서는 벼 농사를 지었다. 네팔 사람들의 식사는 단출하다. 쌀을 주식으로 푹 삶은 녹두를 반찬 삼아 밥 위에 뿌려 먹는다. 간혹 염소고기로 탕을 끓여 함께 비벼 먹기도 한다. 과거 쌀이 부족했을 때는 수수로 만든 떡을 밥 대신 먹기도 …

<82> 히말라야 산자락 층층이 계단식 논, 우리 다랭이 논 떠올라 |2019. 05.23

‘산은 선택한 사람만 받는다.’(네팔의 속담) 히말라야는 인간에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거칠었다. 하지만 그 품을 넓었다.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산맥은 구름을 만들었고 부족함 없이 비를 뿌렸다. 연중 따스하고 포근한 날씨에 산줄기 끝 자락 넓게 펼쳐진 땅은 농사를 짓기 안성맞춤이었다. 산 민족 사람들의 생김새는 초원의 사람과 닮았지만 삶과 문화…

<81> 히말라야에서 만난 마을 앞 오색천 ‘타르초’ |2019. 05.02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히말라야를 보기란 쉽지 않다. 네팔의 우기가 시작되는 4월에는 더 그렇다. 구름이 없고 비가 오지 않는 날, 한달에 한번 정도가 고작이다. 하늘과 맞닿은 높은 산 히말라야는 평상시 그 자태를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더 신성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히말라야의 꼭대기는 늘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있다. 히말라야라는 이름도 고대 산스크리트어…

100여개 민족·백송이 꽃 신비로운 ‘神의 나라’ |2019. 04.19

“우리는 백송이의 꽃, 하나로 통합된 우리 네팔인.(중략…) 지식과 평화와 평원과 언덕과 높은 산의 땅이여, 나눌 수 없는 사랑 하는 우리의 모국 네팔이여. 여러 민족, 언어, 종교, 믿을 수 없는 문화들이 퍼진 이 땅. 우리 모국 네팔이여 영원하라!” 네팔의 국가 ‘백송이의 꽃’에는 ‘네팔’이라는 나라의 의미가 그대로 담겨있다. 100여개 민족이 각기 …

<80>120개 민족 다문화 품은 히말라야 … 포용과 공존의 성지 |2019. 04.19

높은 산은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간혹 그 자태를 드러내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는 웅장했다. 구름을 뚫고 뻗어 오른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햇볕을 받아 더 찬란한 빛을 발했다. 이 모든 광경이 경이로웠다. 먼 옛날 인간은 산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신령한 산에는 신(神)이 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땅 위를 뚫고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신들이 사는…

[아시아문화 원류를 찾아서] 몽골 민족시인·작사가 후렐바타르“어머니와 고향 생각하는 마음 몽골과 한국 쏙 닮아” |2016. 04.18

“유목민에게 고향은 어머니 같은 존재이며,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통로입니다.” 몽골의 민족 시인 후렐바타르(60)의 고향은 울란바토르에서 1000㎞ 떨어진 고비알타이다. 그는 울란바토르에서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지만 한 시도 고향의 하늘과 땅과 강물을 잊은 적 없다. 그는 몽골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대부분을 작사하기도 했다. …

[아시아문화 원류를 찾아서] 9부 몽골 브럇트 편 <13> 변화 겪는 전통문화 |2016. 04.18

만남과 헤어짐이 극명한 곳이 초원이다. 가축을 몰고 옮겨 간 곳이 새 거처이며, 이동 과정에 숱한 이별이 존재한다. 어제의 이웃이 내일의 적이 되고, 서로 칼을 겨누던 적도 시간이 지나면 친구가 된다. 유목민의 고단한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브럇트 민족이 그러했듯, 몽골도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크게는 중국의 통치를 받는 내몽고자치구와 러시아의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