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저항, 담대한 항거…이름 없이 싸운 독립운동가들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아무도 몰랐던 독립운동 이야기, 김종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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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대한민국은 무수히 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피와 땀이 토대가 됐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 속에서 접하는 영웅이나 의병, 독립운동가들은 익히 열려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들의 노고와 애국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의 역사가 존재할 수 있었다.
역사 이면에는 기록되지 않는, 또는 애써 외면 받아온 이들의 삶이 놓여 있다. 전면에 부각되지 않았다고 해서 숨은 영웅들의 나라 사랑도 미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누군가는 격랑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몸을 바쳤고, 재산을 바쳤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광복 81주년이 되는 해다. 광복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과 대가를 치렀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당장 역사의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려보면 당시의 사정과 모습들이 그려진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털어 독립자금을 마련한 이도 있었고, 한국인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본인에 대항해 파업으로 맞선 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더러 역사는 이름을 날린 이들만 기억하고 기록한다. 분명한 것은 한 명의 영웅 뒤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간 수많은 민초들의 헌신과 노고가 있었을 터였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아무도 몰랐던 독립운동 이야기’는 무명한 독립운동가들을 소환한다. 작지만 위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애국, 진정한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월간 ‘말’ 동북아 전문기자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방문학자로 활동한 김종성 작가다. 지금까지 ‘친일파의 재산’, ‘친일파의 굴욕’, ‘역사 추리 조선사’ 등 의미 있는 저술을 통해 우리 역사 이야기를 전달해오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은밀하게 또는 담대하게 일제에 맞섰다. 1903년 11월 24일 고영근은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고 일본으로 도주한 우범선을 응징했다. 당시 고영근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50세였다. 그는 당시 권문세가였던 민영익 가문의 시중꾼으로 궁에 출입하면서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역임되기도 했다. 혼란스러웠던 시국과 맞물려 그는 진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했지만 마지막에까지 생존하지는 못했다.
그가 이끈 독립협회는 고종의 견제로 해산됐고 이후 재건을 이끌었지만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그런 연유였다. 일본 보호 아래 망명 중이던 우범선을 복수할 수 있었던 것은 망명객 윤효정의 도움이 있었다. 우범선을 살해한 고영근은 이 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대한제국의 ‘자국민 보호’에 따라 1909년 우리나라로 송환됐다. 저자는 “고영근이 우범선을 처단한 것은 친일파를 처단한 것”이었다고 본다.
밤에 산에서 횃불을 치켜들고 만세를 부른 동네 머슴들 이야기도 있다. 1919년 4월 6일 김천군 개령면 동부동 뒷산에서 머슴들이 “조선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3월부터 4월 사이에 네 번이나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번째 시위에서는 모두 9명의 머슴이 함께했다. 김명길, 윤광어리, 정남준, 그리고 김임천, 김타관, 도말영, 이말용, 최가만, 황도석이 그 주인공들. 앞의 3명은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않았고, 나머지 6명은 지정됐다.
당시에는 횃불 시위가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야간의 산 정상에서의 횃불 만세운동은 주위를 밝히는 효과 외에도 주민들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3·1운동’은 학생들과 일반 농민들을 떠올릴 수 있다. 농민 중에는 소작농, 자작농도 있었지만 머슴으로 불리는 농업 노동자들도 있었다. 저자는 머슴들도 만세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들을 제외하고 3·1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이밖에 책에서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막아낸 송수만을 비롯해 ‘홍길동’이라 불린 전설의 독립운동가 이관술, 죽음을 불사하고 항거한 최덕지 전도사, 한인애국단원이자 김구의 수행비서였던 이화림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북피움>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역사 이면에는 기록되지 않는, 또는 애써 외면 받아온 이들의 삶이 놓여 있다. 전면에 부각되지 않았다고 해서 숨은 영웅들의 나라 사랑도 미진했다고 볼 수는 없다. 누군가는 격랑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몸을 바쳤고, 재산을 바쳤다.
당장 역사의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려보면 당시의 사정과 모습들이 그려진다. 자신이 가진 재산을 털어 독립자금을 마련한 이도 있었고, 한국인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는 일본인에 대항해 파업으로 맞선 이들도 있었다.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아무도 몰랐던 독립운동 이야기’는 무명한 독립운동가들을 소환한다. 작지만 위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애국, 진정한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 1929년 2월 1일자 조선일보가 원산 총파업을 보도한 사진. 사진에는 ‘단결의 위력을 보이는 원산노동연합회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은밀하게 또는 담대하게 일제에 맞섰다. 1903년 11월 24일 고영근은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하고 일본으로 도주한 우범선을 응징했다. 당시 고영근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50세였다. 그는 당시 권문세가였던 민영익 가문의 시중꾼으로 궁에 출입하면서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역임되기도 했다. 혼란스러웠던 시국과 맞물려 그는 진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했지만 마지막에까지 생존하지는 못했다.
그가 이끈 독립협회는 고종의 견제로 해산됐고 이후 재건을 이끌었지만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것은 그런 연유였다. 일본 보호 아래 망명 중이던 우범선을 복수할 수 있었던 것은 망명객 윤효정의 도움이 있었다. 우범선을 살해한 고영근은 이 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대한제국의 ‘자국민 보호’에 따라 1909년 우리나라로 송환됐다. 저자는 “고영근이 우범선을 처단한 것은 친일파를 처단한 것”이었다고 본다.
밤에 산에서 횃불을 치켜들고 만세를 부른 동네 머슴들 이야기도 있다. 1919년 4월 6일 김천군 개령면 동부동 뒷산에서 머슴들이 “조선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3월부터 4월 사이에 네 번이나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번째 시위에서는 모두 9명의 머슴이 함께했다. 김명길, 윤광어리, 정남준, 그리고 김임천, 김타관, 도말영, 이말용, 최가만, 황도석이 그 주인공들. 앞의 3명은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않았고, 나머지 6명은 지정됐다.
당시에는 횃불 시위가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야간의 산 정상에서의 횃불 만세운동은 주위를 밝히는 효과 외에도 주민들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3·1운동’은 학생들과 일반 농민들을 떠올릴 수 있다. 농민 중에는 소작농, 자작농도 있었지만 머슴으로 불리는 농업 노동자들도 있었다. 저자는 머슴들도 만세 시위에 참여했는데 이들을 제외하고 3·1운동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이밖에 책에서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막아낸 송수만을 비롯해 ‘홍길동’이라 불린 전설의 독립운동가 이관술, 죽음을 불사하고 항거한 최덕지 전도사, 한인애국단원이자 김구의 수행비서였던 이화림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북피움>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