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 통합시장 검증무대가 사라졌다
정병호 정치부 기자
2026년 03월 08일(일) 19:55
북송 시대 정치인 왕안석은 부국강병을 꿈꾸며 신법을 강력히 추진했다. 농민의 짐을 덜고 나라 곳간을 채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탁상공론에 그쳐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 땅에 발 딛고 사는 이들의 목소리가 빠진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역사의 교훈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전남광주특별시 초대 수장 선출을 앞두고 보여준 일련의 과정은 이 오래된 교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두 지자체의 통합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다. 막중한 책임을 질 첫 지도자를 뽑는 과정이라면 당사자인 지역민의 뜻이 가장 세밀하게 반영될 판을 까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앞서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 추천관리위원회는 경선에 시민배심원제 도입을 전격 제안했다. 단순 여론조사가 맹목적인 세 과시나 인지도 싸움으로 변질될 우려를 씻어내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일반 시민이 깊이 있는 숙의를 거쳐 후보자의 비전과 자질을 꼼꼼히 검증하게 하자는 깊은 뜻이 담겼다.

하지만 최고위는 기존 룰을 유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당심과 민심을 반영한 여론조사의 틀을 유지하고, 시민배심원제를 배제하고 투표권이 없는 ‘정책배심원단’을 두기로 했다.

뼈아픈 지점은 현재 당 최고위원 가운데 광주시나 전남도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바닥 정서를 대변할 창구가 닫힌 채, 지역 백년대계를 좌우할 선거 규칙이 철저히 중앙당 시각만으로 재단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광주와 전남 지역에서는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다. 그렇기에 당내 경선 룰은 본선거의 규정만큼이나 무겁고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일당 독식 구도 속에서 중앙당이 유권자의 직접 검증 기회마저 축소한 것은, 지역민을 이른바 맹목적인 지지층으로만 바라보는 오만으로 비칠 여지가 다분하다.

물론 당이 지역 민심을 아예 외면한 것만은 아니다. 민주당은 통합특별시의 광범위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동부와 서부, 북부 3개 권역으로 나누어 합동연설회와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통합 초기 지역 간 소외감을 해소하고 각 권역 현안을 심도 있게 다루겠다는 나름의 묘안으로 풀이된다. 또한 수천 명의 배심원단을 꾸리고 숙의하는 데 따르는 적잖은 비용과 시간, 공정성 시비 등 현실적인 단점도 십분 이해가 간다.

문제는 치열한 숙의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관위가 배심원제의 한계를 모를 리 만무함에도 굳이 그 험난한 방식을 꺼낸 이유를 지도부가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역 토론회가 유권자가 직접 묻고 따지는 시민배심원제의 묵직함을 대체하기엔 충분한지는 의문이다. 올해 선거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지역민이 직접 검증 무대에 오를 기회를 폭넓게 열어주었어야 했다. 일당 독주 체제에서 지역 미래를 이끌 첫 단추를 끼우는 기로에, 중앙당 주도로 밀착 검증 기회를 거둬들인 것은 못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진정한 자치 시대는 탁상공론보다 현장의 치열한 숙의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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