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켜켜이 쌓아…‘참된 것은 번쩍거리지 않는다’
정희승 개인전 ‘운주로 가는 길’
26일~3월 4일 동구 무등갤러리
‘미륵바다’·‘미륵연작’ 등 모티브
2026년 02월 25일(수) 19:35
‘운주, 구름배’
“‘참된 것은 번쩍거리지 않는다’는 ‘진광불희’(眞光不輝)가 이번 전시의 주된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희승 작가는 조용한 사람이다. 밖을 지향하기보다 내면을 바라본다. 타고난 천품이 별 말이 없다. 묵묵히 작업에 정진할 뿐이다.

조인호 광주미술문화연구소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일시적 즉흥보다는 긴 시간 켜켜이 쌓아 올리는 열념(熱念)과 정성의 과정”에 힘을 쏟는다. 아마도 정 작가는 창작에 독이 되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을 가장 경계하는 것 같다.

자기 피알시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해야 인정받는 시대에 그는 ‘드러냄’에 하등의 관심이 없다. 예술가는 예술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는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정 작가가 5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운주로 가는 길’을 주제로 무등갤러리에서 26일부터 3월 4일까지 작품전을 갖는 것.

전시를 앞두고 정 작가와 통화를 했다. “석조불감을 답사하며 그것의 조형적 형태와 비율이 자유롭고 고졸한 느낌이 들었다”는 말에서 ‘참된 빛은 번쩍거리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가 대략 가늠이 됐다.

“석조불감 안의 부처도 자유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왔어요. 절대적인 엄격한 비례미가 아닌 편안한 내면의 미를 느낄 수 있었죠.”

정 작가는 지난 2021년 ‘나는 나다’전 이후 조금씩 창작의 영역을 확장해보는 시도를 해왔다. 서민들이나 민중들의 삶을 작업했던 것은 그런 연장선일 것이다. “운주사도 거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2022년부터 집중적으로 했다”며 “윤석열 정권 시기와 겹치는 기간이라 답답한 시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무도한 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운주사에 깃든 민초들의 염원을 창작의 모티브로 가져왔다는 얘기다. 정형에서 벗어나 자연의 미를 발하는 운주사의 불상과 탑들, 그리고 온전하지 못한 석불들은 시대를 초월해 미륵정토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수렴된다.

정 작가는 “알려진 대로 운주사는 미완의 불사다. 그것이 광주의 5월 민중항쟁과 연결된다”며 “몸뚱이를 잃은 채 널브러진 불두(석불 두상)에서 오월의 상흔이 겹쳐 보였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그러면서 “그늘진 곳에 널브러져 있는 불두는 ‘이름도 남김없이’ 죽어간 민초들의 상흔을 떠올리게 했다”며 “제 작업 속 불두는 오늘의 역사를 일궈온 민중들과 오월 희생자들을 향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진광불휘(眞光不輝)
이번 전시에서는 수채화 연작 12점, 유화 연작 13점을 볼 수 있다. 주요 주제는 ‘미륵바다’, ‘미륵연작’, ‘진광불휘(眞光不輝) 연작’, ‘운주사 풍경’ 등 모두 4가지로 압축된다.

‘미륵바다’
푸른 바다에 누워 있는 ‘미륵바다’는 고해나 해원의 바다로 다가온다. “직접적으로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가슴 아팠던 사건을 다뤘다”면서도 “물을 배경으로 하기에 신화적, 설화적 관점에서 재생이나, 민중의 염원, 개벽 세상과 같은 뜻을 함의한다”고 정 작가는 언급했다.

조인호 대표는 “거친 세상을 덮고 산등성이까지 차오른 새로운 기운이 물결치며 밀려들어 와불을 띄우는 ‘미륵바다’는 이고득락(離苦得樂) 세상의 대변혁을 희망하는 정희승의 묵언 웅변이다”고 평했다.

운주골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구현한 그림도 있다. ‘운주, 구름배’, ‘운주의 기억’ 등은 그림을 매개로 운주의 미학과 감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손에 잡힐 듯 아련히 펼쳐진 운주골은 눈에 보이는 외형을 넘어 작가의 내면에 침윤된 이상적인 풍경으로 읽힌다.

정 작가는 “운주사는 너무나 유명한 사찰로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며 “제가 작품을 통해 해석한 면들이 관람객들에게 의미있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한편 광주 출신인 정 작가는 광주전남미술인공동체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광주민미협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월전 ‘희망의 근거’, ‘화가의 지갑전’ 등을 기획했으며 ‘도원으로 가는 길을 묻다’ 등 다수의 개인전, ‘시간의 흔적 예술의 울림’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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