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가 일상이 된 시대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6년 02월 25일(수) 00:20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세계적인 고전이다.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카뮈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적어도 세계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첫 문장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 뫼르소르의 건조한 독백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을 만큼 강렬하다.

소설 ‘이방인’은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카뮈는 기존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무너진 것을 ‘부조리’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전에는 ‘부조리’(不條理) 의미가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음”이라고 기술돼 있다. 물론 문학적 관점에서 부조리는 훨씬 포괄적이다. ‘무의미한 세계에 처한 인간의 인식을 드러내는 경향’을 뜻하는데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행태는 다분히 부조리한 특징을 보여준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다. 주인공은 장례식 때 시신 옆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다음날 직장 동료였던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다.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상주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가장 황당한 장면은, 며칠 후 뫼르소르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은, 바닷가 모래밭에 놀러 갔다가 햇볕에 눈이 부신 나머지 우발적으로 발포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일들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부조리함을 환기한다. 요즘 들어 무시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면들, 무엇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혐의’ 재판을 둘러싼 과정에서 보여지는 몇몇 장면들이 그렇다.



‘내란 혐의’ 재판의 몇몇 장면들

지난 19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될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표정이 화제가 됐다. 방청석 일부 지지자들의 “윤 어게인” 응원에 윤 전 대통령이 미소를 머금었는데, 며칠 전 그보다 앞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도 내란 특검팀의 사형 구형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대학 재학 시절 학교 모의재판 당시 판사로서 전두환 당시 국보위원장에게 사형을 선고한 장본인이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이르는 것일까 싶다.

지난해 3월 헌재 탄핵 결정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나온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은 ‘비상식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기존의 구속 기간 해석인 ‘날’을 ‘시간’으로 해석해 풀어준 사례는 일반 법 감정과는 사뭇 괴리가 있었다. 재판 내내 제기됐던 ‘재판을 레크레이션 진행하듯 한다’라는 우려도 엄숙하고 엄중해야 할 재판을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비단 부조리한 장면들은 내란 혐의 재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 고위직을 역임했거나 현재 국회의원인 인사들을 둘러싼 부조리한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대선에서 ‘괴물 독재국가의 출현을 막는다’며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 행보는 두고두고 뒷말을 낳았다. 민주당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인 그의 ‘배신’은 지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이해찬 전 총리 조문을 가지 않은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의 도량을 가늠할 수 있는 사례였다.

젊은이들을 분노하게 하고 절망하게 했던 ‘부조리한 판결’도 있다. ‘곽상도 아들 대장동 50억 퇴직금’ 무죄 판단이 대표적이다. 1심에서 곽 의원은 공소기각, 아들은 무죄 결정이 내려졌다. 평생을 일해도 퇴직금이 고작 1억원 안팎인 직장인들이 부지기수인데 ‘뇌물’이 아니고서야 6년 남짓 근무한 직원의 퇴직금이 50억원이라는 사실은 젊은이들의 공분을 사고도 남았다. 검찰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을 역임한 곽 전 의원을 보고 업자들이 돈을 준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정치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

얼마 전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국민의힘 박충권 의원의 발언은 여러 면에서 부조리한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우리 국군에 대해 “딱 하나 있는 게 김정은 심기 보좌밖에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김민석 총리는 “정부와 국군에 대한 모독”이라고 맞받아쳤다. 자유를 찾아 탈북해 남한에서 국회의원이 된 그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박 의원은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이기에 그 같은 발언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터였다.

다시 소설 ‘이방인’으로 돌아가보자. 책 제목부터 ‘이방인’(異邦人)인 걸 보면 주인공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인물인지 보여준다. 12·3 내란부터 1심 선고에 이르기까지 부조리한 장면과 상황들, 그리고 정치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언행들을 많이 목도했다. 한마디로 ‘이방인들의 행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장 압권은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 1심 판결문의 비유였다. 상식적인 국민들의 입장에서 내란을 성경 읽는 행위에 비유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언어도단이자 부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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