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종결된 사건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질문이다. 무엇이 폭력이었는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오는 3월 개봉을 앞둔 박기복 감독의 중편영화 ‘밥’ 스틸컷.<무당벌레필름 제공> |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고인돌’ 등을 연출하며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박기복 감독이 5·18 연작의 세 번째 작품 ‘밥’으로 3월 중순 관객과 만난다. 제작사 무당벌레필름은 신작 ‘밥’과 전작 ‘낙화잔향-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다’를 묶은 특별상영회를 3월부터 5월까지 광주와 전남 일대에서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18민주화운동 46주년을 앞두고 광주와 전남 각지를 순회한다.
러닝타임 40여분의 중편영화인 ‘밥’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소설을 직접 재현하기보다 소설 속 인물 ‘동호’를 영화적 상상력으로 다시 불러내 오늘의 시간과 겹쳐 놓는다.
 오는 3월 개봉을 앞둔 박기복 감독의 중편영화 ‘밥’ 스틸컷.<무당벌레필름 제공> |
영화는 굶어 죽은 모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사찰을 찾은 여고생 무용수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추모의 춤을 올리던 그는 1980년 5월 희생된 소년 시민군의 영혼과 마주한다. 아직 소년의 얼굴을 간직한 그는 왜 죽어야 했는지 말하지 못한 채 떠난 존재다. 무용수는 소년의 시선을 따라 과거의 공간으로 이동하고, 현재의 시간 위로 1980년의 기억이 겹쳐진다.
 오는 3월 개봉을 앞둔 박기복 감독의 중편영화 ‘밥’ 스틸컷.<무당벌레필름 제공> |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대사가 없다는 점이다. 여고생 무용수와 소년, 계엄군 등 모든 인물이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눈빛과 몸짓, 구음(口音) 음악이 서사를 이끈다. 다. 관객은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배우들의 눈빛과 움직임을 통해 소년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를 짐작하게 된다. 박 감독은 “구호나 외침보다 침묵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는 3월 개봉을 앞둔 박기복 감독의 중편영화 ‘밥’ 포스터.<무당벌레필름 제공> |
상징적 장치도 눈에 띈다. 영화 속 계엄군은 군복 대신 방역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병균과 같은 시민은 제거해야 한다’며 폭력을 정당화하는 권력의 시선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또 ‘야차’로 형상화된 인물은 극단주의와 망각의 얼굴로, 기억을 방해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형식은 실험적이지만 국가폭력과 기억의 문제를 오늘의 감각으로 환기하려는 메시지는 비교적 또렷하다.
제목 ‘밥’은 영화의 핵심 상징이다. 작품 속에서 소년의 어머니는 밥을 짓는 인물로 등장하고, 주먹밥은 반복적으로 화면에 놓인다. 박 감독은 “모든 이념과 사상에 앞서는 것은 결국 밥, 곧 삶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추상적 언어 대신 가장 일상적인 단어를 통해 5월을 다시 바라보겠다는 의도다.
 오는 3월 개봉을 앞둔 박기복 감독의 중편영화 ‘밥’ 스틸컷.<무당벌레필름 제공> |
이번 작품은 광주문화재단 광주문화자산콘텐츠화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제작됐다. 전남예술고 무용과 박소희, 연극과 윤성휘·노건우·박서연 등이 출연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몸으로 표현했다. 청소년 배우들의 참여는 기억을 다음 세대의 몸으로 이어간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주요 촬영지는 화순 이양 쌍봉사, 광주 희경루, 옛 적십자병원, 충장로 구도심 등 광주·전남의 역사적 공간이다. 특히 옛 적십자병원은 영화의 핵심 배경으로 등장한다. 1980년 5월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인 만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공간이며 보존의 필요성도 함께 짚는다.
 오는 3월 개봉을 앞둔 박기복 감독의 중편영화 ‘밥’ 스틸컷.<무당벌레필름 제공> |
박 감독은 “5·18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켜야 하는지 묻는 역사”라며 “그 정신이 헌법 전문에 분명히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억이 제도와 문장으로 남을 때 비로소 공동체의 약속이 된다”며 “영화가 그 약속을 다시 환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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