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기자의 육아일기 ] ‘돌봄 공백’ 기댈 곳은 부모님 뿐 … 미안함과 든든함 사이
[(5) 보이지 않는 노동 ‘황혼육아’]
부부 각자 퇴근 시간 제각각…주 3회는 친정에 하원 부탁
정부 지원 하원 시터 대기 많고 사설 시터는 비용 감당 안돼
맞벌이 절반 이상 부모 도움받아…72%가 비자발적 육아
등·하원, 병원 동행·식사 등 ‘보이지 않는 노동’ 고강도
광주시, 전국 첫 ‘손자녀 돌보미’ 제도화…돌봄수당 도입
황혼육아 공적 책임 움직임…국가 차원 보편적 지원 필요
부부 각자 퇴근 시간 제각각…주 3회는 친정에 하원 부탁
정부 지원 하원 시터 대기 많고 사설 시터는 비용 감당 안돼
맞벌이 절반 이상 부모 도움받아…72%가 비자발적 육아
등·하원, 병원 동행·식사 등 ‘보이지 않는 노동’ 고강도
광주시, 전국 첫 ‘손자녀 돌보미’ 제도화…돌봄수당 도입
황혼육아 공적 책임 움직임…국가 차원 보편적 지원 필요
![]() 할머니·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도율이의 모습. 말없이 머무는 순간에도 두 사람의 사랑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
“선생님, 오늘 도율이 하원은 할머니 댁으로 부탁드려요.”
복직 3개월 차 초보 워킹맘인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어린이집 선생님께 이런 부탁을 한다. 신문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지면 마감에 따라 퇴근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15개월 난 아들 도율이의 하원 이후 돌봄은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자연스레 아이의 저녁 시간대 돌봄은 남편이 퇴근 후 대부분을 맡고 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직장인이다 보니 업무가 밀려 늦어지는 날이면, 우리 부부는 결국 친정 부모님의 손을 빌린다.
맞벌이 가정이라는 점을 감안해 오후 8시까지 돌봐주는 종일반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 돌을 지난 아이를 하루 12시간 넘게 돌봄시설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결국 욕심을 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있다.
사실 복직과 동시에 도율이를 집 근처 어린이집이 아닌, 차로 15분 거리의 원도심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등·하원 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집에서 거리가 있지만, 어린이집 바로 옆이 친정엄마 집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궁리 끝에 찾아낸, 다소 ‘꼼수’에 가까운 묘안이었다.
아이를 부모님 집으로 보내는 날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무엇보다 저녁 끼니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동생들까지 거들면 돌봄의 부담은 자연스레 분산된다. 현실적으로 이보다 안정적인 양육 여건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시선을 달리하면, 이는 독립한 가정을 꾸렸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원가족의 돌봄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도움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책임을 조용히 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 이유다.
그런데도 나는 도율이가 기저귀가 차 있거나, 콧물 범벅 혹은 젖은 턱받이를 보면, 엄마에게 짜증부터 낸다. 황혼육아에 접어든 부모님보다 퇴근하는 엄마 얼굴을 보고 달려오는 도율이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안온한 노년 생활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 보다 항상 도율이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마, 아빠에게 맡기자”고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복직 전 하원 시터를 알아봤지만 정부 지원 아이돌봄서비스는 대기자가 너무 많아 사실상 이용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사설 시터를 쓰자니 한 사람의 월급이 통째로 사라지는 수준의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퇴근길에 친정엄마 집으로 향해 도율이를 데려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밤 9시가 다 돼 있다. 아침부터 어린이집 버스와 어린이집, 그리고 할머니 집을 오가며 하루를 보낸 아이가 잠투정을 하며 내 품에 안길 때면 마음이 저릿해진다. 괜히 엄마에게 짜증부터 냈던 순간이 떠올라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마음과는 달리, 나는 항상 가장 편한 사람에게 가장 모진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럼에도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는 선택이다. 아이 육아를 조부모 손을 빌리는 맞벌이 부부는 우리 부부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2024년 발표한 ‘근로자 모성보호제도 확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자녀 양육에 아이의 조부모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응답이 48.8%에 달했다. 외조부모가 32.8%, 친조부모가 16.0%로 나타났다.
한 시니어 매거진이 황혼육아 중인 조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황혼육아 실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2%는 손주 육아에 대해 “비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답했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대부분 ‘맞벌이 자녀를 돕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평균 주 3회 이상, 하루 6.8시간 손주돌봄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이른바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시대다. 그런데 황혼육아 노동은 대부분 무급이자 비공식 영역에 머물러 있다.
‘잠깐 봐주지’라는 선의로 시작된 황혼육아는 어린이집 등·하원부터 병원 동행, 식사 챙기기 등 돌봄의 밀도는 높아지는 사이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남겨지는 셈이다.
최근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조부모 돌봄수당’을 도입하며 황혼육아에 대한 공적 책임을 나누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광주시는 전국 최초로 ‘손자녀 가족돌보미 지원사업’을 선보이며 제도화에 한발 앞서 나갔다. 이 사업은 미취학 아동(6세 이하)을 돌보는 조부모나 4촌 이내 친인척에게 한달에 30만원에 해당하는 일정 금액의 돌봄수당을 지급해 맞벌이·다자녀 가정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그동안 가족 내부의 책임으로만 여겨졌던 돌봄을 사회가 함께 나누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조부모 돌봄수당은 지자체별로 지원 대상과 금액, 조건 등에 차이가 커 체감도 역시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국가 차원의 보편적 지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설 명절,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도율이에게 한복을 입히고 고사리 손에 친정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쥐여 보냈다. 비록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그 작은 봉투에 우리가 매일같이 기대고 있는 돌봄의 무게와 감사의 마음을 함께 담고 싶었다. 아빠는 “이 돈으로 도율이 장난감이나 사줘야 겠다”며 웃었고, 엄마는 “손자는 올 때 반갑고, 갈 때 더 반갑다”고 농담을 건넨다.
웃음 섞인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을 나는 안다. 자식의 육아를 다시 떠안은 노년의 하루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오늘도 또다시 전화를 건다.
“선생님, 오늘 도율이 하원은 할머니 댁으로 부탁드려요.”
/글·사진=도선인 기자 sunin@kwangju.co.kr
복직 3개월 차 초보 워킹맘인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 어린이집 선생님께 이런 부탁을 한다. 신문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지면 마감에 따라 퇴근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15개월 난 아들 도율이의 하원 이후 돌봄은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자연스레 아이의 저녁 시간대 돌봄은 남편이 퇴근 후 대부분을 맡고 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직장인이다 보니 업무가 밀려 늦어지는 날이면, 우리 부부는 결국 친정 부모님의 손을 빌린다.
사실 복직과 동시에 도율이를 집 근처 어린이집이 아닌, 차로 15분 거리의 원도심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등·하원 버스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집에서 거리가 있지만, 어린이집 바로 옆이 친정엄마 집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맞벌이 부부가 궁리 끝에 찾아낸, 다소 ‘꼼수’에 가까운 묘안이었다.
![]() 할아버지 품에 안겨있는 도율이의 모습. |
그런데도 나는 도율이가 기저귀가 차 있거나, 콧물 범벅 혹은 젖은 턱받이를 보면, 엄마에게 짜증부터 낸다. 황혼육아에 접어든 부모님보다 퇴근하는 엄마 얼굴을 보고 달려오는 도율이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안온한 노년 생활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 보다 항상 도율이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마, 아빠에게 맡기자”고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다. 복직 전 하원 시터를 알아봤지만 정부 지원 아이돌봄서비스는 대기자가 너무 많아 사실상 이용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사설 시터를 쓰자니 한 사람의 월급이 통째로 사라지는 수준의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퇴근길에 친정엄마 집으로 향해 도율이를 데려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밤 9시가 다 돼 있다. 아침부터 어린이집 버스와 어린이집, 그리고 할머니 집을 오가며 하루를 보낸 아이가 잠투정을 하며 내 품에 안길 때면 마음이 저릿해진다. 괜히 엄마에게 짜증부터 냈던 순간이 떠올라 미안함과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마음과는 달리, 나는 항상 가장 편한 사람에게 가장 모진 말을 내뱉곤 한다.
그럼에도 부부 중 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는 선택이다. 아이 육아를 조부모 손을 빌리는 맞벌이 부부는 우리 부부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2024년 발표한 ‘근로자 모성보호제도 확대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자녀 양육에 아이의 조부모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응답이 48.8%에 달했다. 외조부모가 32.8%, 친조부모가 16.0%로 나타났다.
![]() 어린이집과 할머니·할아버지 집을 오가며 하루를 보낸 도율이가 지친 듯 잠들어 있다. |
이른바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시대다. 그런데 황혼육아 노동은 대부분 무급이자 비공식 영역에 머물러 있다.
‘잠깐 봐주지’라는 선의로 시작된 황혼육아는 어린이집 등·하원부터 병원 동행, 식사 챙기기 등 돌봄의 밀도는 높아지는 사이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남겨지는 셈이다.
최근에는 여러 지자체에서 ‘조부모 돌봄수당’을 도입하며 황혼육아에 대한 공적 책임을 나누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광주시는 전국 최초로 ‘손자녀 가족돌보미 지원사업’을 선보이며 제도화에 한발 앞서 나갔다. 이 사업은 미취학 아동(6세 이하)을 돌보는 조부모나 4촌 이내 친인척에게 한달에 30만원에 해당하는 일정 금액의 돌봄수당을 지급해 맞벌이·다자녀 가정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그동안 가족 내부의 책임으로만 여겨졌던 돌봄을 사회가 함께 나누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조부모 돌봄수당은 지자체별로 지원 대상과 금액, 조건 등에 차이가 커 체감도 역시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국가 차원의 보편적 지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맞벌이 부모를 둔 15개월 도율이는 어린이집과 할머니·할아버지 집을 오가며 스스로 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
웃음 섞인 말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간을 나는 안다. 자식의 육아를 다시 떠안은 노년의 하루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오늘도 또다시 전화를 건다.
“선생님, 오늘 도율이 하원은 할머니 댁으로 부탁드려요.”
/글·사진=도선인 기자 sunin@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