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 기억되지 않는 것이 진실일 수 있죠”
정강철 소설가 첫 산문집 ‘기억나지 않는 것들’ 펴내
격랑의 시대 건너온 평범한 이웃들 삶 담담하게 기술
2026년 02월 20일(금) 20:52
진실은 더러 기억 너머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 그 무엇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억을 붙들고 산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맞물려 기억은 더러 윤색되거나 재구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의 이면에 자리하는 것은 ‘진실’이라는 실체일 것이다.

정강철 소설가가 펴낸 ‘기억나지 않는 것들’(문학들)은 작가가 살아오면서 기억하는 다양한 순간과 장면들을 수필로 풀어낸 산문집이다.

고교 3학년 때 1980년 5·18을 겪었던 이야기, 군부독재와 싸우며 대학을 다녔던 기억 등 젊은 시절의 고뇌 등이 유려한 문체 속에 녹아 있다. 또한 참교육 운동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왔지만 그럼에도 중심에 서지 못하고 늘 주변을 떠돌아야 했던 데서 오는 자조의 탄식도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격랑의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잃지 않았던 인간적인 가치, 평범한 이웃으로서 삶을 대면하는 자세 등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 담담한 어조로 기술하고 있다.

정 작가는 20일 전화 통화에서 “기억하는 것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며 “기억되지 않는 것이 진실일 수 있고 소중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이번 산문집을 펴내게 된 배경을 말했다.

다분히 반어적이다. 그는 “감출 수 없는 진실, 혹은 나름의 가치를 내재하는 것들은 기억나지 않는 것들에 가려져 있을 수 있다”며 웃었다.

작가의 고백에는 다양한 함의가 내재돼 있을 터였다. 소설식으로 말하면 ‘복선’이라는 장치가 산문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강철 소설가. <정강철 제공>
그는 “글을 쓰면서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과 잘 못했던 것들, 부족했던 것들을 많이 생각했다”며 “그런 내용을 기억의 갈피를 더듬어가며 완성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느꼈던 단상들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도 많다”며 “개인적으로 비와 술을 좋아하는데, 그러다보니 문단 사람들과 어울렸던 ‘흑역사’들도 빼놓을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좋지 않은 기억들과 상처,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는 얘기이다. 이번 수필집에는 그런 내용을 직조화한 글들이 적지 않다.

37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경험을 살려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담았다. 그는 ‘일탈도 힘이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 청소년들이 모범생답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한편으론 새롭게 도전해보는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새로움의 가치와 발견은 ‘상식’이 아닌 ‘일탈’에서 찾아질 때가 많죠. 지나치게 틀에 얽매이다 보면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정 작가는 “기억은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이 있다”며 “그러나 안 좋은 기억도 삶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상처, 아픔,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어두운 그림자가 오히려 반전의 힘이 될 수 있다”며 “다소 문학적인 주제일지 모르지만 부정적인 것들, 일테면 기쁨보다는 슬픔, 아픔, 그런 기억이 삶을 살아가는 좋은 질료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37년간 학교생활 하면서 시원섭섭한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이에 대해 그는 “오히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며 아이들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했다.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며 고교 교사로 정년을 한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일 터였다. 글을 쓰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창작과 직장생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병행할 수 있었을 터였다.

이번에 처음 산문집을 낸 것에 대해 그는 “그동안 소설 쓰면서 산문을 조금 쉽게 본 측면이 있었는데, 막상 수필을 쓰다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며 “산문은 그야말로 독특한 세계 그 자체다. 쓰는 동안 너무 힘들었다”며 “새로운 창작 세계의 맛을 봤다고나 해야 할까? 산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영광 출신의 그는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사회성 짙은 소재와 부조리한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그려왔다. 장편 ‘신·열하일기’, 문예위 3천만 원 공모 당선작 ‘블라인드 스쿨’, 소설집 ‘수양산 그늘’, ‘원교’ 등을 발간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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