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재단을 폐지하라 - 김진균 성균관대 초빙교수
2026년 02월 10일(화) 00:20
작년에 사지 않은 금 때문에 더 가난해지고, 10년 전에 사놓지 않은 집 때문에 더 막막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자산 가치 폭등이라는 재앙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본화하는 금융상품이 ETF이다. 푼돈이라도 조금씩 투자하면 자산 이익을 그만큼 조금이라도 나눠가질 수 있는 세계로 투자자를 유인한다. 자산 가치 상승으로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털어, 손에 쥐어보지도 못할 자산 가치 상승의 거름통에 쏟아붓게 만드는 금융상품인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비정규교수들이 강의료가 들어오지 않는 보릿고개 같은 겨울방학을 마치는 이 무렵, 매년 한국연구재단에서는 연구지원 공고를 낸다. 날로 가난해지는 삶의 바닥에서 자산시장을 올려다보는 시민들처럼, 비정규교수도 연구 중산층이 되고 싶은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지원 공고를 들여다보게 되는 계절인 것이다. 비정규교수들도 연구재단 연구계획서를 쓰는 일이 자신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연구재단 체제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 빈민의 처지를 벗어나려면 연구계획서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연구계획서는 실적, 계획, 의의 등을 나누어 서술하도록 체계적으로 규격화되어 있다. 평가지표도 체계성, 기여도, 경제성 등의 표현들이 각진 틀에 앉혀 제공된다. 심사를 통해 높거나 깊거나 서로 다른 방향의 다양한 동기들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줄세우고, 길거나 짧거나 서로 다른 길이의 다양한 결과들을 수월성이라는 가치로 잘라내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심사를 염두에 두고 효율성과 수월성 논리를 장착하고 나면 연구계획서는 학계의 평균적 범위를 유지하되 약간의 유행 담론을 섞는 정도의 전형적 방법으로 수렴된다.

그만그만하게 평균적이고 전형적인 계획서들은 이제 자기 착취를 얼마나 더 계량화된 수치로 잘 제시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경쟁하게 된다. 여기에 공동체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나 질문의 모험 같은 것들을 담기는 쉽지 않다.

과거 구조조정으로 IMF를 극복하던 시절 학술진흥재단을 통해 만들어진 ‘학진 체제’는 논문을 계량화하여 평가하는 제도로 대한민국 학계를 몰아넣었다. 학계가 20여년 계량 평가에 적응한 결과가 평균적이고 전형적인 자기착취형 연구계획서인 것이다. 피로사회의 일부인 대학이 피로학계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연구계획서를 관통하고 있는 효율성과 수월성 그리고 계량화는 화폐라는 단일 가치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 기재부의 논리가 교육부의 예산을 쥐고 흔든 결과이기도 하다. 당초 연구 공동체나 학문 생태계 혹은 학술의 사회적 책임 따위는 전혀 평가할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고 보는 기재부가 예산 통제권을 무기로 학계가 사회나 동료를 생각할 여유를 박탈한 것이니, 교육부가 기재부의 예산 통제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정적 결과의 하나가 연구재단 시스템인 것이다.

연구계획서는 연구자가 이러한 연구재단 시스템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연구재단을 좌우하는 교육부, 교육부를 통제하는 기재부, 기재부에 내재된 한국사회 시스템, 즉 자본의 의도에 점령당한 한국사회 시스템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도생의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연구 공동체를 구성할 엄두는 못 내고, 학문 재생산 단절로 인접 학분 분야가 통째로 소멸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학문 생태계를 구축할 생각도 못한다. 무엇보다 비정규교수의 고통이 한국사회 시민들의 고통과 하나의 축으로 이어져 있다는 조망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전시하는 서글픈 부조리극이기도 한 것이다.

신채호는 1925년 ‘낭객의 신년만필’에서 당대 식민지 학자들이 대소강약을 숫자로만 비교하는 안목에 갇혀 필패의 결론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고 비판한 바 있다. 설령 패하고 망할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음을 모르는 얼치기 현실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말이다. 신채호는 필패의 결론을 피해 계산이 나오지 않는 혁명을 향해 갔다.

어쩌면 계량화와 수월성과 효율성으로 점철된 연구계획서가 오늘날 비정규교수에게 필패의 결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구계획서를 요구하는 시스템을 폐지하고 연구 공동체와 학술 생태계와 사회적 책무를 추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지금으로선 계산이 나오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연구재단 시스템은 비정규교수 자신을 위해서도, 학계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자, 만국의 비정규교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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