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감각, 장석주 지음
2026년 02월 06일(금) 00:20
연필이 종이를 스치는 사각거림,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이어지는 호흡. 필사는 문장을 눈으로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몸으로 통과시키는 일이다. 빠르게 읽고 잊히는 문장이 넘쳐나는 요즘 천천히 곱씹고 옮겨 적는 필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장석주의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이 개정판으로 돌아왔다. 시·소설·철학·에세이에서 가려 뽑은 명문장 68편을 담고, 곧바로 따라 쓸 수 있도록 노트 형식으로 엮었다.

괴테와 톨스토이, 카프카, 헤르만 헤세 같은 고전 작가들부터 피천득, 박완서, 김애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문장들이 고루 실렸다. 책은 이를 ‘감정을 다스려주는 문장’, ‘인생을 깨우쳐주는 문장’, ‘일상을 음미하게 하는 문장’, ‘생각을 열어주는 문장’, ‘감각을 깨우는 문장’ 등 다섯 갈래로 나눈다.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한 장을 펼쳐 마음이 머무는 문장을 골라 적어볼 수 있다.

예컨대 롤랑 바르트의 사랑에 대한 통찰이나 괴테의 고백, 카프카의 날 선 문장은 읽을 때와 쓸 때가 다르게 다가온다. 문장을 베껴 쓰는 동안 독자는 속도를 늦추고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며 문장 속 사유를 따라가게 된다. 활자로만 존재하던 문장이 자신의 필체를 입는 순간 문장은 다시 살아 움직인다.

각 문장 뒤에는 짧은 해설이 덧붙어 이해를 돕지만 중심은 어디까지나 ‘직접 써보는 시간’에 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삶의 방향을 잠시 잃었을 때, 혹은 이유 없이 공허할 때 펜을 들어 한 문장을 옮겨 적어보라고 권한다.

필사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하루 10분의 고요일지 모른다. 느리게 읽고 천천히 쓰는 사이, 문장은 독자의 내면에 스며들어 오래 남는 힘이 된다. <청림출판·2만원>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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