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떠난 자리, 예술이 정차하다
[팔도건축기행]<50> 전남도립미술관
옛 광양역사터에 2021년 개관
좌우로 길게 뻗은 미술관
기차 세 량 이은 듯 흥미롭고
시간·날씨·계절 따라 변하는
유리 파사드 이채롭고
층고 6m에 달하는 전시장
2026년 02월 02일(월) 19:00
지난 2021년 옛 광양역사 자리에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은 건물 전체를 감싼 유리 파사드가 인상적으로 미술관 외벽은 자연을 그대로 담은 캔버스 역할을 한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전남 광양에 자리한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을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비스듬히 경사진 모습으로 자리한 미술관은 외관을 감싼 푸른 빛의 유리 파사드와 어우러져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침 개관 기념 전시 제목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였는데, 미술관 이미지와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다.

위로 높이 솟은 대신 좌우로 길게 펼쳐진 미술관은 실제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중간에 세로로 길게 틈을 둬 외관상 세 개의 건물이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미술관 자리가 옛 기차역이었음을 떠올린 사람들은 마치 기차 세 량을 연결해 놓은 듯한 미술관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볼 터다. 유리로 덮인 미술관은 자연을 그대로 담아내는 캔버스 역할을 한다. 야간개장일에 미술관을 찾는다면 실내 불빛이 바깥으로 쏟아지며 만들어내는 멋진 야경도 감상할 수 있다.

층고가 6m에 달하는 갤러리는 다채로운 전시 가능하다. 현재 열리고 있는 ‘김선두-색의 결, 획의 숨’ 모습.


◇광양역사 터에 자리한 미술관

2015년 미술관 부지 선정 후 6년만인 2021년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은 옛 광양역사터에 자리잡았다. 1967년 개통된 광양역은 2011년 경전전 복선 전철화로 이전되며 기능을 멈춘 상태였다. 오랜 기간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던 열차가 오고 가던 장소가 이제 문화 예술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간이 된 셈이다.

미술관 설계는 서울의 에스아이(SI) 건축사무소와 광주의 (주)디아이지(DIG) 건축 사무소가 맡았다. 공모 당시 ‘전남의 풍경을 담다’라는 콘셉트를 제시한 사무소는 옛 폐선부지의 대지 조건을 살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 건물 배치와 공간 활용 계획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미술관은 영산강·지평선 위의 하늘 등 전남의 풍경을 담은 ‘하늘’(자연을 담은 미술관), 공원의 흐름과 미술관을 연결한 ‘땅’(발걸음이 머무는 미술관), 가변형 전시공간과 자연을 옮겨놓은 듯한 실내를 염두해둔 ‘공간’(재미가 있는 미술관), 공동체적 가치를 만드는 ‘사람’(지역공동체 에코 미술관) 등 네가지 테마로 설계됐다.

4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연면적 11, 547㎡ 의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다. 지하 1층에는 전시실, 수장고, 어린이 아뜰리에가 자리하고 있으며 지상 1층에는 카페와 기증전용관이 있다. 2층은 대강의실(188석)과 워크숍 공간, 3층은 사무공간으로 쓴다.

대지의 흐름을 따라 낮고 길게 설계한 미술관 건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외벽을 감싼 유리 파사드로 시간과 날씨, 계절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펼쳐보인다. 유리 외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비스듬히 설치된 얇고 긴 수직 알루미늄 루버(louver)는 각도에 따라 건물에 다양한 모습을 부여하며 외벽의 하얀색 오브제는 건물의 포인트 역할을 한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유리 외벽의 장점을 만날 수 있다. 유리 벽면을 통해 외부의 빛이 미술관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면서 시간대별로 변하는 자연광이 공간의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복도를 이동하거나 건물 위 아래 층을 오르락 내리락 할 때도 유리창 너머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탁 트인 유리창을 통해 하루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미술관 앞 잔디광장에 설치된 자비에 베이앙의 ‘새’ 등 다양한 조각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옛 광양역의 물류창고 두 동을 리모델링한 ‘광양예술창고’.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미술관 내부는 유리 파사드를 통해 빛이 쏟아진다.


◇지하에 배치된 전시장과 선큰가든

미술관의 핵심 시설은 전시공간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전시장을 모두 지하 1층에 집중 배치해 관람동선을 최적화했다. 계단을 내려가 전시장 로비에 서면 3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탁월한 개방감과 곳곳에 있는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크고 작은 9개의 전시실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의 가변형으로 설계돼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전시를 구상할 수 있다. 특히 전시장 층고가 6m에 달해 설치, 회화, 조각, 미디어 아트 등 초대형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데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현재 열리고 있는 ‘김선두-색의 결, 획의 숨’, ‘정기용 컬렉션:플럭서스에서 모더니즘까지’, ‘미디어 아트 소장품’전 역시 공간의 특성을 잘 반영한 전시이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리움미술관 순회전’, ‘조르주 루오전’, ‘마나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전’ 등의 굵직한 전시도 큰 인기를 모았다.

올해는 여수 출신 손상기 화백과 그의 예술세계 및 한국 미술에 영향을 준 1950년대 유럽 앵포르멜의 대표 작가 장 포트리에를 연결하는 특별전을 비롯해 ‘천년의 보물전’, ‘허달재 초대전’ 등 다양한 전시가 예정돼 있다.

전시장 양쪽에 자리한 두 개의 ‘선큰 가든(Sunken Garden)’은 가장 인상적인 공간 중 하나다. 전시를 관람하다 마치 ‘비밀의 공간’처럼 발견하게 되는 선큰 가든은 ‘쉼과 힐링’의 장소로 전시장이 ‘지하’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준다.

지하 공간의 상부를 개방해 하늘과 나무 등 외부 자연 환경을 그대로 품은 중정은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빛과 그림자를 선사한다. 다채로운 종류의 나무가 식재된 선큰 가든은 ‘지붕 없는 갤러리’이기도하다. 기획전시의 콘셉트에 맞게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며 현재는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 작품과 류인 작가의 조각 작품 ‘지각의 주’가 관람객들을 맞는다.

관람객들은 길게 이어지는 전시장 복도 안 의자에 앉아 유리창을 통해 바깥 정원과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마치 액자 속에 담긴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마음 내키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바람을 맞으며 자연 속에 설 수도 있다.

지하 전시장의 ‘쉼터’ 역할을 하는 선큰 가든은 ‘지붕 없는 갤러리’다.


◇역사의 또 다른 흔적 광양예술창고

미술관 앞 잔디광장을 가로지르면 옛 광양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건물이 나온다. 광양역 낡은 물류 창고 두 동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광양예술창고’다. 이곳은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문화 아지트로 변신, 미술관과 함께 오픈했다.

‘소통·교류·동행’ 의미를 담은 ‘소교동 B’는 과거 창고의 목재 트러스트 구조를 그대로 살린 게 특징이다. 높은 층고와 천장 끝까지 이어진 서가, 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며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 등이 열린다. ‘미디어 A’ 동은 실감영상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미디어 영상실과 갤러리, 이경모 사진작가가 기증한 사진기와 작품 전시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광양예술창고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인서리 공원’도 들러볼 만하다. 오래된 양곡창고와 한옥 14채를 리노베이션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양곡 창고를 개조한 전시공간 ‘반창고’, 아트숍이자 프린트 스튜디오 ‘아트앤에디션’, 카페 ‘Aat’, 북카페 겸 라이브러리, 100년 역사의 한옥스테이 등으로 이뤄져 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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