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 옆 미술관…고딕의 도시, 현대미술 메카 되다
[세계 미술관 기행] <13>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
팝아트·피카소 세계 최고 컬렉션
러 아방가르드·독일 표현주의 보고
미술관 상당 부분 지하 배치
쾰른 대성당 압도적 높이 부각
2026년 02월 02일(월) 00:20
루드비히 미술관은 파리, 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파블로 피카소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달리자 쾰른 중앙역에 닿는다. 구글맵을 켜고 출구로 나오는 순간, 공간이동을 한 듯 눈앞에 쾰른 대성당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고딕양상의 157m 첨탑이 인상적인 쾰른 대성당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쾰른 여행의 시발지이기도 한 이 곳은 하루 평균 2만 명이 방문하는 독일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래 쾰른 대성당과 더불어 관광객을 불러 들이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쾰른 최초의 현대미술관이자 7만 여 점의 소장품을 지닌 루드비히 미술관(Museum Ludwig)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팝아트 컬렉션과 세계에서 세번째로 방대한 피카소 컬렉션(900점), 독일 표현주의의 보고(寶庫, 150점), 러시아 아방가르드 컬렉션(600점)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난 1986년 문을 연 루드비히 미술관은 퀼른 대성당의 건축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톱날 모양의 모던한 양식으로 설계했다. 미술관 뒤로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퀼른 대성당이 보인다.
#성당 옆 미술관

쾰른 대성당에서 도보로 2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루드비히 미술관은 화려한 건축미와는 거리가 멀다. 톱날 모양의 모던한 외관을 지니고 있어 눈여겨 보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미술관으로 들어서면 반전이 펼쳐진다. ‘문화적’이지 않은 건물에 기대감 없이 들른 방문객들의 시선을 빼앗는 20세기 현대미술의 걸작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광을 끌어 들인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한점 한점이 현대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문제작’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루드비히 미술관은 본고장인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팝아트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초콜릿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독일의 기업인이자 미술수집가인 페터 루드비히(Peter Ludwig)와 이레나 루드비히(Irene Ludwig) 부부가 수십년 동안 구입한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클래스 올덴버그, 니키 드 상팔 등 스타작가들의 대표작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루드비히 부부 기증작 350점 모태

지난 1976년 두 사람이 쾰른시에 기증한 350점 가운데 60% 이상이 팝아트 계열의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앤디 워홀의 대표작인 ‘마를린 먼로’ 초상화 연작에서부터 ‘캠벨 수프 캔’, 영화 속 서부극 의상을 입은 엘비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찍어낸 ‘엘비스 프레슬리’ 등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다른 전시실로 발길을 옮기면 ‘미술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M-Maybe’(어쩌면)가 눈에 들어온다.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만화의 한 장면을 확대해 점(Benday Dot)으로 채워 넣은 기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옆에는 루드비히 부부가 1968년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서 직접 구매한 톰 웨셀만의 ‘위대한 미국 누드 No. 98’, 부드러운 비닐과 천 소재를 활용해 제작한 클래스 올덴버그의 ‘부드러운 타자기’(Soft Typewriter), 신문이나 사진 등 일상의 파편들을 결합한 로버트 라우션버그 (Robert Rauschenberg)의 ‘콤바인 페인팅’이 줄줄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팝아트 컬렉션은 ‘미술관 거리’(Museum Street)’라고 불리는 내부 중앙 통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전시실에 내걸려 있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독특한 내부 동선은 루드비히 미술관의 또 다른 ‘볼거리’다.

루드비히 미술관 1층에는 20세기 현대미술과 미국 팝아트 컬렉션이 전시돼 있다. 단순한 형태와 강렬한 빨강색이 인상적인 이사무 노구치 작 ‘Play Sculpture’.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피카소 컬렉션’

루드비히 부부가 기증한 350점을 모태로 1986년 문을 연 미술관은 쾰른 출신의 유명 건축가 피터 부스만(Peter Busmann)과 고트프리트 하베러(Godfrid Haberer)의 설계로 탄생했다. 두 건축가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쾰른 대성당과의 차별화를 위해 철저히 ‘독립적인’ 건물로 디자인했다. 쾰른 대성당의 압도적인 높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건물의 상당 부분(지하 1층, 지상 4층)을 지하로 배치한 게 눈길을 끈다. 그래서인지 26만㎥의 방대한 면적에도 외부에서 보면 전혀 튀지 않고, 주변의 건축물들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술관 한 가운데 자리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피카소 컬렉션과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루트비히 부부는 평생 수집한 1만 4000점을 전 세계의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대여했는데, 특히 1994년과 2001년 두차례에 걸쳐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에 900여 점(회화 180점, 사진, 그래픽, 판화 730점)의 피카소 작품을 쾌척해 화제를 모았다. 이는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의 컬렉션이다. 고전양식 시기의 대표작인 ‘손을 모은 할리퀸’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과 공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아티초크를 든 여인’, 독창적인 입체감을 엿볼 수 있는 청동조각작품 ‘유모차를 미는 여인’, ‘투우’ 시리즈 판화, 세라믹 작품 등은 피카소 컬렉션의 백미다.

루드비히 미술관이 자랑하는 또 다른 컬렉션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독일 표현주의 미술이다. 1970년대 사업확장을 위해 구 소련을 방문했던 부부는 지하 창고나 개인 서재에 은폐된 혁명기의 러시아 미술품에서 추상미술의 근원을 발견하고 대규모로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철의 장벽을 넘어 러시아 미술을 수집한 서구인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쾰른 넘어 독일 대표하는 미술관 부상

150점의 독일 표현주의 컬렉션은 루드비히 미술관의 또 하나의 큰 축인 요제프 하우브리히의 유산이다. 미술작품을 퇴폐의 온상으로 규정한 나치 정권의 탄압속에서 독일 표현주의 작품들을 지켜낸 쾰른 출신 변호사 요제프 하우브리히가 1946년 기증한 것으로,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에리히 헤켈, 카를 슈미트-로틀루프 등 ‘다리파(Die Brucke)’ 작가, 우구스트 마케, 프란츠 마르크 등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작가들의 걸작이 포함됐다. 쾰른시가 루드비히 미술관을 건립하게 된 데에는 요제프 하우브리히 컬렉션도 한몫했다.

올해로 개관 40주년을 맞은 루드비히 미술관은 쾰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이자 관광자산으로 도시를 빛내고 있다. 오랫동안 쾰른 대성당을 품은 역사의 도시로 유명했지만 이젠 ‘현대미술의 메카’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드비히 미술관은 관광객과 미술애호가들에게 쾰른을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쾰른 글·사진=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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