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통합, 정치적 결단만으로는 안된다 - 이현종 전국시민의회포럼 공동대표
2026년 01월 26일(월) 00:20
광주·전남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는 통합 특별시에 자치권을 강화하고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통합을 하면 많은 경제적 혜택이 주어질 것이라는 낙관도 쏟아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다. “이 통합이 과연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점이다.

연방제에 가까운 지방분권이 이루어져 민주주의가 강화될 것이라 떠들지만, 그것이 정치인들의 권한 강화에 그치고 주민들의 참정권 확대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일이다.

예산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 혜택이 일부 토호 사업가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주민들이 소외된다면, 이는 통합을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지방자치와 지역개발 과정은 늘 그래왔다. 이번에도 자치권의 강화는 정치인과 행정가들의 선에서 멈추고, 늘어난 예산은 기득권의 배를 불리는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주민자치회가 있고 공청회도 열린다고 항변하겠지만, 이 역시 관제(官製)의 성격이 짙을 뿐만 아니라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형식적 절차만 밟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의된 특별법안에 공론화 방식과 협의체 구성이 명시된 점은 고무적이나, 현재 시·도가 주도하는 방식에는 통합을 전제로 한 홍보 위주이거나 엘리트층의 파편화된 입장만 대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다. 그렇다면 광주·전남 행정통합 추진 방식 또한 그 이름에 걸맞아야 한다. 중앙정부가 효율성을 위해 통합을 꾀할 수는 있으나 결정의 주체는 시장이나 도지사가 아닌 시·도민이어야 한다. 일회성 투표나 단순 여론조사가 아니라 시민들이 깊이 있게 숙의하고 판단할 수 있는 공론장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역·성별·연령별 인구 비례를 맞춘 균형 있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장단점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대안을 찾아가는 신중한 과정이 필수적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성급히 밀어붙인 통합은 필연적으로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벌써 광주시민은 역사·문화적 정체성 훼손을 우려하고, 전남도민은 흡수 통합에 따른 농어촌 소멸을 걱정한다. 이런 우려를 방치한 채로 통합을 서두른다면 행정은 통합될지언정, 시민에게는 오히려 갈등 요인만 제공한 꼴이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전문가 몇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주권자인 시·도민이 직접 참여하여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주권자인 주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숙의하고, 때로는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면서 의견을 모아가야 한다.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시민의회(Citizen’s Asembly)를 구성하여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라야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진정한 ‘심리적 통합’까지 이룰 수 있다.

시민의회는 이미 국내외적으로 그 유효성이 확인되었다. 국가적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의 사례가 있었고, 광주시에서도 ‘지하철 2호선 시민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극심한 갈등을 조정한 사례가 있다. 인구비례에 맞춰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다양한 관점의 정보를 학습하고 숙의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이 방식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가장 민주성이 높은 제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오는 지방선거까지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시민의회를 구성하여 갈등은 줄이고 효과는 높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또한 통합 이후에도 헌법에 보장된 국민주권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시민의회를 구성하여 주민참여 민주제를 시행한다면, 광주·전남은 명실상부한 민주화의 성지로서 그 명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9354400794824131
프린트 시간 : 2026년 01월 26일 17: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