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도시, ‘양’이라는 평가로 답하지 마라 - 윤희철 생태도시리빙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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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A씨는 연말 인사고과에서 ‘양’을 받았다. 수우미양가 중 ‘양’, 명백한 하위 등급이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왔다. 휴직으로 인한 공백을 만회하고자 더 열심히, 더 세심하게, 더 조심스럽게 일했다. 팀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육아휴직이 조직에 피해라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평가 결과는 그의 기대와 달랐다. 조직이 전한 메시지는 분명했다. “당신은 아직도 완전히 복귀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 평가가 주는 충격은 단지 심리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인사고과 결과는 성과급과 인센티브, 향후 연봉 인상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승진 경쟁에서도 불리해진다. 결국 ‘양’이라는 두 글자는 수백만원의 수입 손실로 이어지고 복귀자의 경제적 안정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부담이 된다. 제도적으로 육아휴직은 보장되어 있지만 휴직 이후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보호받지 못한 채 오히려 더 큰 불확실성과 편견 속에서 감점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한다.
2024년 광주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자들은 복귀 이후 평가, 보상, 배치, 승진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했다. 특히 남성은 여성보다 불이익을 더 자주 겪었고 여전히 ‘남성은 일하고, 여성은 돌본다’는 고정관념이 조직 내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육아휴직은 제도적으로 성 중립적이지만 실제 사회는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복귀자는 늘 ‘위험 요소’로 간주되고 평가에서는 감점 대상이 된다. 이는 직장 문화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위계와 편견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런 현실은 책임을 복귀자 개인에게 떠넘긴다. “아이 낳고도 일하려면 그 정도 감수해야지”, “공백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복귀자의 노력과 시간을 평가절하하고 육아와 노동을 함께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사회 전체에 퍼뜨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부모가 되는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손해와 불이익이 명확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 이상 삶의 기쁨이 아닌 ‘계산’의 대상이 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근로의욕의 상실이다. 복귀자가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다음엔 굳이 그렇게까지 애쓸 이유가 없어진다. 이는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점이 예상되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좌절감이다. 복귀자는 점점 조직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직장은 이들을 ‘성의는 있지만 실적은 부족한’ 인력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구조가 지속된다면 육아휴직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닌 짐이 되고 아이는 축복이 아니라 회피해야 할 위험이 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문제다.
이제 우리는 성평등한 도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보육시설이 많고 부모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이 경력에서 불이익 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도시가 성평등한 도시다. 복귀자에게는 감점 대신 회복의 시간이 주어지고 인센티브 구조 속에는 차별이 아닌 배려가 반영되어야 한다. 평가 제도 역시 돌봄 경험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경력의 공백은 결손이 아닌 경험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복귀자는 다시 경력 경로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설 수 있어야 한다.
아이 낳는 것을 장려한다고 저출생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부모가 되는 선택을 한 이후의 삶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선택 가능한 삶’이 된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이 감점이 아니라 공감을 받는 도시, 그곳에서만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자랄 수 있다. 성평등은 단지 선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일상 구조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조의 출발점은 복귀자에게 허락된 ‘두 번째 출발선’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을 받아야 한다. 육아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응답하고 있는가. 인사고과의 ‘양’으로 답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는 환대의 마음으로 맞이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저출생 시대, 우리가 설계해야 할 도시의 진짜 얼굴이다. 그 얼굴이 따뜻할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런 현실은 책임을 복귀자 개인에게 떠넘긴다. “아이 낳고도 일하려면 그 정도 감수해야지”, “공백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잖아”라는 말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복귀자의 노력과 시간을 평가절하하고 육아와 노동을 함께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사회 전체에 퍼뜨린다. 그 결과 사람들은 부모가 되는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손해와 불이익이 명확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더 이상 삶의 기쁨이 아닌 ‘계산’의 대상이 된다.
더 우려되는 것은 근로의욕의 상실이다. 복귀자가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다음엔 굳이 그렇게까지 애쓸 이유가 없어진다. 이는 개인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점이 예상되는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좌절감이다. 복귀자는 점점 조직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직장은 이들을 ‘성의는 있지만 실적은 부족한’ 인력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구조가 지속된다면 육아휴직은 더 이상 권리가 아닌 짐이 되고 아이는 축복이 아니라 회피해야 할 위험이 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문제다.
이제 우리는 성평등한 도시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보육시설이 많고 부모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이 경력에서 불이익 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도시가 성평등한 도시다. 복귀자에게는 감점 대신 회복의 시간이 주어지고 인센티브 구조 속에는 차별이 아닌 배려가 반영되어야 한다. 평가 제도 역시 돌봄 경험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경력의 공백은 결손이 아닌 경험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복귀자는 다시 경력 경로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설 수 있어야 한다.
아이 낳는 것을 장려한다고 저출생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부모가 되는 선택을 한 이후의 삶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선택 가능한 삶’이 된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사람이 감점이 아니라 공감을 받는 도시, 그곳에서만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자랄 수 있다. 성평등은 단지 선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과 일상 구조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조의 출발점은 복귀자에게 허락된 ‘두 번째 출발선’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진지하게 질문을 받아야 한다. 육아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응답하고 있는가. 인사고과의 ‘양’으로 답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는 환대의 마음으로 맞이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저출생 시대, 우리가 설계해야 할 도시의 진짜 얼굴이다. 그 얼굴이 따뜻할 때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