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디 할머니, 박완서 지음
2026년 01월 23일(금) 00:20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기록해온 작가 박완서. 전쟁과 가난, 가족과 여성의 삶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의 소설은 언제나 개인의 삶에서 출발한다. 비극을 과장하거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그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말과 선택을 통해 사회의 구조와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다.

작가의 타계 15주기를 맞아 박완서의 대표 단편 10편을 엮은 소설집 ‘쥬디 할머니’가 출간됐다. 구병모, 김연수, 박상영, 최은영, 한강 등 한국 대표 소설가 31명에게 작품 선정을 청해 가려 실었다. 이미 널리 읽힌 작품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단편들도 함께 실려 박완서 문학의 폭과 깊이를 동시에 보여준다. 작가의 문장은 단순하지만 가볍지 않고 냉정하지만 차갑지 않다. 인물들은 특별하지 않지만 생생하며 이야기는 조용히 진행되다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삶의 민낯을 드러낸다.

표제작이자 작품집의 시작을 여는 ‘쥬디 할머니’는 장성한 오 남매를 두고 혼자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쥬디 할머니의 평화로워 보이는 삶을 보여주다가 뜻밖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이어간다. 노년의 여성 인물을 통해 삶의 의지와 선택의 의미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애 보기가 쉽다고?’와 ‘공항에서 만난 사람’은 전쟁 이후의 사회와 개인의 상처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며 박완서 특유의 현실 인식과 서사 감각을 잘 보여준다. ‘도둑맞은 가난’, ‘부처님 근처’,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는 작가의 초기작들로, 1970년대 초 신인이었던 작가의 작품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활발히 활동중인 한국 대표 소설가들에게 최고의 소설로 뽑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학동네·1만8500원>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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