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리포트, 대릴 샤프 지음, 정여울 옮김
2026년 01월 23일(금) 00:20
직장이 힘든 이들은 꿈에서 출근하는 악몽을 꾸고, 소풍을 앞둔 아이들은 기대감에 잠을 자면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꿈은 몸과 마음이 주고받는 신호이자, 일상의 균형 상태를 비추는 창이다. 집단무의식, 콤플렉스, 페르소나 같은 개념으로 알려진 카를 융의 분석심리학은 이러한 신호를 읽는 하나의 틀을 제시해 왔다. 다만 방대한 개념과 전문용어 탓에 그의 이론은 종종 난해하게 받아들여져 왔다.

캐나다 출신 융 심리학자 대릴 샤프는 ‘서바이벌 리포트’에서 이 장벽을 낮춘다. 평생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 대신 사례와 이야기로 융 심리학을 풀어낸다. 책은 소설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다. 번아웃과 관계의 붕괴를 겪은 중년 남성 노먼이 상담실 문을 두드리며 이야기가 시작되고, 독자는 상담 장면을 따라 그의 꿈과 기억, 말의 여백을 함께 들여다본다. 이 과정에서 중년의 위기가 핵심 주제로 떠오른다. 융 심리학에서 중년은 쇠퇴가 아니라 전환의 시기다. 사회적 역할에 맞춰 살아온 삶이 흔들릴 때 억눌렸던 내면의 목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상담 장면에는 꿈 분석과 그림 그리기, 글쓰기 같은 실제 기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반복되는 꿈은 현재 상태를 비추는 단서가 되고, 아니마·아니무스, 그림자, 페르소나 같은 핵심 개념은 딱딱한 설명이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장면으로 펼쳐진다.

책이 강조하는 것은 ‘고쳐야 할 문제’보다 ‘들어야 할 신호’다. 우울과 불안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계기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에 갇힌 삶이 어떤 한계를 갖는지, 그림자를 외면할수록 왜 더 큰 혼란이 오는지를 짚으며 나답게 사는 길을 제시한다. <크레타·1만7800원>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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