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 - 강정희 전 중학교 교사·소설가
2026년 01월 16일(금) 00:00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저 시절만 해도 아파트에 자연 친화적 서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 후로 아파트는 리모델링 재건축 신축을 계속해오며 외양도 내부도 크게 변화하였다. 노래도 새로운 분위기의 곡이 발표되었다. 최근에는 ‘아파트, 아파트’라는 가사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후렴구가 강렬한 노래가 세계적인 무슨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건물에 여러 가구가 독립적으로 살도록 지은, 5층 이상의 공동 주택, 아파트먼트의 사전적 의미다. 우리나라 가구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아파트를 그냥 ‘집’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요즘 지은 아파트는 공간 효율을 위해 발코니를 없애고 창밖에 쇠울타리 높이를 높였다. 이중유리문으로 소음과 외기를 완벽에 가깝게 차단하며 거실 창문을 열어 자연 환기하기가 쉽지 않다. 고층이라면 집 안 거실에서도 마치 절벽 위에 서 있는 듯 지상 세계가 아득하다. 단지 내에 공원 놀이터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그에 비하면 전면과 후면에 너른 발코니가 있는 오래된 15층 아파트의 3층, 우리집은 마당이 있는 주택처럼 편안하다.

얼마 전 여행 삼아 서울에 다녀왔다. 공연과 전시를 보러 가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큰 시장과 호젓한(호젓하기를 바라며) 한옥마을을 목적지로 정했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과 현장의 공기를 숨 쉬며 걷는 답사는 감흥이 다르리라 기대했다. (과연 엄동설한 정월의 서울 공기는 대단했다.)

서울은 건물로 가득 차 있었다. 콘크리트와 유리와 철제로 지어 올린 건물들, 서울은 건물의 숲이었다. 우리 건축 기술, 정말 훌륭하구나. 하지만 괜찮을까. 사무실 아닌 주거 건물이 초고층이라니.

하지만 문제는 높이가 아닌 가격. 겹겹이 층층이 지어 올린 아파트는 지역에 따라 수십억 원. 그 가격을 모두 합산해 보면 어떨까. 아마도 헤아리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일지도 모른다. 광주 변두리에 사는 안빈낙도 자연인에게는 두서없이 이상한 생각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이렇게나 아파트가 많은데 집이 없는 사람은 또 그렇게나 많다니, 그 점도 이해 불가다.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시간과 같은 속도로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간극을 따라잡거나 좁힐 수 없다. 성실한 노동 소득만 모아서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아파트, 사물의 가격이 정해지는 기본 요건인 ‘수요 공급의 법칙’에서도 예외이고, ‘감가상각’이라는 명목에서도 벗어난 특수한 재화인 아파트는 괴물인가.

르 코르뷔지에 등 현대 건축가들이 도시 밀집 지역의 서민을 위해 고안하여 짓기 시작한 아파트는 서울의 경우 높은 가격으로 서민의 생애 대부분을 담보하는 고통이 되었다.

아무래도 조선시대 남산 묵적골 선비 허생이 부활해서 금융업자 변부자에게 돈을 대출받아 수도권의 아파트를 모조리 사서 묶어 놓은 성싶다. 심지어 허생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당시 허생은 제수용 과일을 매점매석하여 유통을 뒤흔들었고, 이어 제주에서는 갓과 망건의 재료인 말총을 사재기했다. 오늘날 이 시대의 허생들이 제수 과일과 말총 대신 아이템을 아파트로 정한 것이 틀림없다. 이 시대의 허생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소위 뷰 좋고 넓고 높은 집, 멋지게 인테리어한 집에 살겠지.

자기 소유의 집이 없는 이는 자주 부동산 동향을 살피면서 집을 사야 할지, 산다면 어느 시점에 사야 할지 고민하고, 금리와 대출이자를 계산한다. 자녀가 있다면 방을 마련해 주기 위해 평수를 늘릴 궁리를 해야 한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이도 미래의 집값이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 실존 철학적 사유는 사치다. 삶의 기본 조건인 주거 공간 집 걱정, 개인의 몫인가.

실학자 박지원은 일찍이 허생을 내세워 조선 후기 사회현실을 짚어 비판하였으나 해법은 알려주지 않았고 지금도 시원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나아질 거라는 낙관을 가진 이도 없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은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인간을 압도하는 초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집을 생각하며 남대문시장과 익선동 골목을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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