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노트 - 정병호 정치부 기자
행정통합 대의와 ‘광주’ 시대정신
2026년 01월 12일(월) 19:30
‘광주시’라는 광역자치단체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게 됐다.

광주시와 전남도가 잠정적으로 ‘광주전남특별시’를 행정통합 명칭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행정통합은 지방 소멸을 막고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항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하지만 통합의 과정에서 결코 놓쳐선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광주’라는 이름이 갖는 독보적인 무게감이다.

대한민국 지명 중 지역의 이름 그 자체가 ‘시대정신(Zeitgeist)’으로 통용되는 곳은 광주가 유일하다.

우리는 ‘부산 정신’이나 ‘대구 정신’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러나 ‘광주 정신’은 다르다.

1980년 5월 독재에 항거하며 피로써 민주주의를 지켜낸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가치를 대변하는 고유명사다.

광주라는 두 글자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각인돼 있다.

행정 구역의 명칭 변경이 도시의 정체성과 영혼을 흔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역사를 되짚어보면 지명의 상실은 곧 그 지역의 격(格)과 정신을 훼손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역모가 발생하거나 패륜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해당 고을의 등급을 강등하고 지명을 바꾸는 것을 형벌로 삼았다.

일제강점기 창지개명(創地改名) 또한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자행됐다. 물론 작금의 행정통합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자발적 선택이다.

그러나 효율성을 앞세운 행정 편의주의가 수십 년간 쌓아온 ‘민주 인권 도시 광주’라는 브랜드를 희석시킨다면, 뼈아픈 실책이 될 것이다.

마산은 3·15 의거와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로서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자부심이 컸다. 그러나 창원시로 통합되며 그 이름이 삭제되자 지역민들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과 상실감은 예상보다 컸고, 갈등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행정 구역은 합치되 그 지역이 가진 역사적 맥락까지 희석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오는 16일이면 광주전남의 통합명칭을 포함한 행정통합 특별법안이 발의된다.

시도민은 통합이 가져올 경제적 시너지와 인구 증가 효과를 기대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주문하고 싶다.

통합된 거대 자치단체 안에서도 ‘광주’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과 역사성이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광주시가 폐지되고 단순히 ‘광주전남’이라는 물리적 결합체로만 남는다면, 5·18 민주화운동을 통해 형성된 세계적인 민주 도시로서의 브랜드 가치는 사장될지도 모른다.

‘오월 광주’는 세계기록유산이자 대한민국의 자산이다. 통합의 대의를 따르되 그 그릇에 ‘광주 정신’이라는 알맹이를 어떻게 훼손 없이 담아낼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광주’라는 이름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으로 계속 뛸 수 있도록, 이번 특별법안에 지혜가 담기길 고대한다.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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