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세월을 아끼는 신앙으로 -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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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년시절 또래보다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하기 싫은 달리기 선수를 해야 했다. 육상 선수로 활동하던 당시, 엄청난 선수는 아니었지만 잘하는 것이 있었는데 ‘서전트 점프’(제자리 높이뛰기) 였다. 허벅지가 조금 두꺼운 편이었는데 그래서 점프를 잘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근육들이 많이 없지만 예전 생각을 하며 제자리 멀리 뛰기를 해 보았는데 나름 멀리 뛰는 것을 보며 기분이 좋아 미소를 지었다. 점프의 찰나, 몸이 정점에 머무는 그 순간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마치 공중으로 날 것처럼 뛴다. 하지만 이내 떨어지고 만다. 땅을 딛고 높이 점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끊임없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지구의 중력을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장면 중 하나는 전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선수의 압도적인 점프력이었다. 얼음 위에서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기 위해 단련된 그의 근육은 1m 30cm의 높이를 단숨에 뛰어오르는 경이로운 수직 도약을 만들어냈다. 인간이 중력이라는 거대한 자연의 법칙을 얼마나 치열하게 거스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 장면은 단순히 신체적인 능력을 넘어 하나의 경외감마저 자아냈다. 이 도약의 원리를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신앙의 결단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물질만능주의라는 거대하고 보이지 않는 중력권 안에서 살아간다. 세상의 이치는 명확하다. 물질(돈)을 떠나있는 삶이란 상상하기 힘들다. 돈은 우리 삶의 기반이자 안전망이며, 동시에 우리 영혼을 끊임없이 끌어당기는 무거운 중력이다. 돌이켜보면 작년 한 해는 이 중력에 순응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지나가 버렸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혹은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시간을 세상에 담보로 내어주며 분주함 속에 자신을 방치해왔던 것이 솔직한 고백일지 모른다.
그러나 성경은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세상의 경제 논리를 거스르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린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5-16). 여기서 아끼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인 ‘엑사고라조(exagorazo)’는 시장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사들이다’라는 뜻이다. 즉, 신앙이란 악한 세력과 물질의 중력에 빼앗긴 채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다시 사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주일의 소득이나 세상적 성공의 기회를 뒤로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손해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비상을 위해 중력의 무게를 이겨내는 거룩한 도약의 비용이다.
놀라운 역설은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사들이는 결단과 행함 속에서 일어난다. 물질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 영적인 정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이사야 55:1)는 초대를 만난다. 하나님을 만날 시간을 사기 위해 세상을 향해 물질적인 비용을 지불했더니 정작 그 시간 속에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늘의 생명수와 평안을 값 없이 선물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불한 것은 유한한 소득이었으나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무한한 신앙의 만족이다.
결국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와 위치는 그가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를 통해 증명된다. 신앙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물질적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그것을 아까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거워하는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영적 위치다. 억지로 하는 희생은 고통이지만 더 큰 가치를 발견한 자의 지불은 축제가 된다. 작년처럼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여 시간을 소유하는 삶을 살아 보자. 운동선수가 한계를 돌파하며 점프 하던 그 폭발적인 힘으로 올해는 나를 당기는 비신앙적인 중력을 이긴 자의 자유를 누려보자. 아울러 새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목표들을 이루는 기쁨이 충만한 한 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성경은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세상의 경제 논리를 거스르는 파격적인 명령을 내린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5-16). 여기서 아끼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인 ‘엑사고라조(exagorazo)’는 시장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물건을 ‘사들이다’라는 뜻이다. 즉, 신앙이란 악한 세력과 물질의 중력에 빼앗긴 채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다시 사오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주일의 소득이나 세상적 성공의 기회를 뒤로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손해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인 비상을 위해 중력의 무게를 이겨내는 거룩한 도약의 비용이다.
놀라운 역설은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고 사들이는 결단과 행함 속에서 일어난다. 물질의 중력이 미치지 않는 영적인 정점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이사야 55:1)는 초대를 만난다. 하나님을 만날 시간을 사기 위해 세상을 향해 물질적인 비용을 지불했더니 정작 그 시간 속에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늘의 생명수와 평안을 값 없이 선물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불한 것은 유한한 소득이었으나 그 대가로 얻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무한한 신앙의 만족이다.
결국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와 위치는 그가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를 통해 증명된다. 신앙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물질적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그것을 아까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거워하는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영적 위치다. 억지로 하는 희생은 고통이지만 더 큰 가치를 발견한 자의 지불은 축제가 된다. 작년처럼 시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여 시간을 소유하는 삶을 살아 보자. 운동선수가 한계를 돌파하며 점프 하던 그 폭발적인 힘으로 올해는 나를 당기는 비신앙적인 중력을 이긴 자의 자유를 누려보자. 아울러 새해를 시작하며 다짐했던 목표들을 이루는 기쁨이 충만한 한 해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