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서관 붕괴, 잃은 것과 다시 찾아야 할 것- 박홍근 건축가·공간복지생각 대표
2025년 12월 31일(수) 00:20
지난 12월 11일, 광주대표도서관 신축 현장에서 구조체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사람을 위한 공간을 짓는 과정에서 구조물이 사람을 덮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의 3요소로 ‘구조(構造)’, ‘기능(機能)’, ‘감동(感動)’을 말했다. 이 가운데 무너지지 않고 서 있게 하는 ‘구조’를 지키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형 참사가 광주에서 또다시 발생한 셈이다.

건축 현장은 원시적 도구와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삽과 곡괭이, 레이저 측량기와 드론, 그리고 AI 기반 장비까지 모두 사람의 손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영역이다.

광주대표도서관은 국제현상공모를 통해 독특한 형태의 설계가 채택되었다. 이러한 디자인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구조설계, 공법 선정, 예산확보, 공사 기간, 현장관리가 종합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사고 현장을 보면 이러한 전제들이 충분히 충족되지 않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구조설계의 결함, 부적절한 공법 선택, 철골 접합부 시공 부실, 예상 하중 증가, 잦은 설계변경, 무리한 공기 등 다양한 원인을 제기하고 있다. 요약하면 설계·시공·관리 전반의 복합적 부실이다.

대한민국 건축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등 세계적 건축물들이 한국 기업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에 이어 공공 발주 사업인 광주대표도서관까지 대형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에서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가. 장소와 기업과 사람이 달라졌다고 해도 너무나 차이가 난다. 제도·행정·기술·건축문화 사이의 간극이 크게 드러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부분이다.

이번 도서관 공사의 시공사는 시공능력평가액 약 68억 원의 업체였다. 이 업체가 516억 원 규모의 공사를 총괄했고, 여러 단계에서 설계 검토가 이뤄졌음에도 문제를 걸러내지 못했다. 제도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현장에서는 늘 변수들이 생긴다. 공사 기간 연장이나 예산 증가 요인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외면하고 규정만 앞세운 행정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현장 기술력 저하,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는 관행적 안이함이 겹치며 비극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우리는 이번 사고를 통해 잃은 것과 다시 찾아야 할 것을 냉정하게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잃은 것은 첫째, 광주의 도시 이미지다. “광주, 또 왜 그래”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형 사고가 반복되면서 도시 신뢰도가 추락했다. 둘째, 광주대표도서관의 정상 준공에 대한 기대다. 조사 결과는 시간이 지나 나오겠지만 재착공까지의 절차와 책임 문제는 복잡하다. 현 시공사가 철거부터 재시공까지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셋째, 전문가에 대한 신뢰다. 건축에서 ‘무너지지 않음’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러나 설계·감리·시공 등 전문가들이 관여한 결과물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신뢰 기반을 크게 흔들었다.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것은 첫째, ‘뿌린 대로 거둔다’는 원칙이다. 부족한 예산, 촉박한 공사 기간, 경직된 행정, 낮은 건축문화 수준이 결국 사고의 형태로 드러났다. 둘째, 새로운 성과를 원한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예전 이상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셋째, ‘건축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실과 회의실에선 해결할 수 없다. 현장 상황과 현장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광주는 이번 사고로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교훈을 제대로 새긴다면 더 큰 것을 다시 얻을 수 있다. ‘사람을 위한 건축’이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건축문화와 건축생태계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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