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희망도서 - 김향남 수필가
2025년 12월 29일(월) 00:00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작은 행위에서 묘한 설렘을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거기 있었다. 처음엔 편의 때문이었다. 책값이 부담스러울 때, 보고 싶은 책이 도서관 소장 목록에 없을 때 희망도서 신청은 최선의 선택지였다. 그런데 신청서를 작성하며 책 제목과 저자명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갈 때면, 이상하게도 가슴 한편이 두근거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처음 희망도서 신청서를 작성할 때는 어딘지 모르게 머쓱하고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세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책 중에서 굳이 ‘나’ 한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염치없는 부탁 같았다. 정말 들어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희망’이니까. 희망은 누구라도 품어볼 수 있으니까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더 설레는 건 그 이후였다. 얼마쯤 지나 도서 도착 안내 문자를 받을 때, 그럴 때면 세상에서 나만을 위해 준비된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신청한 사실을 깜박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울리는 알림 문자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내가 원했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내가 띄운 작은 소망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현실이 되었다는 경험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그 순간의 기쁨은 책을 읽는 기쁨과는 또 다른 층위의 것이었다.

서가에서 신청한 책을 꺼내 들 때, 나는 그 책의 첫 번째 독자가 된다. 아직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새 책의 냄새, 빳빳한 표지의 감촉. 내가 신청하지 않았다면 이 도서관에 없었을 책. 그 사실이 묘한 책임감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잘 읽어야겠다는, 이 책을 제대로 만나야겠다는 다짐. 그리고 언젠가 이 책이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갈 거라는 상상을 한다. 서가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할 사람. 그 사람은 내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책을 읽는다.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을지도 모르고, 같은 대목에서 웃거나 울지도 모른다. 내가 신청한 책을 누군가 빌려 읽을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지금 읽는 책도 누군가의 희망이었을지 모른다. 누군가 신청해서 들어온 책들. 그것은 혼자만의 독서가 아니라 누군가와의 대화이고 연결이다.

오래전 DJ에게 음악을 신청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밤 라디오를 틀었을 때 DJ의 구수한 음성과 함께 내가 원한 음악이 흘러나오던 순간.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들어주었고, 기억해주었고, 응답해주었다는 따뜻한 확인. 밤의 어둠 속에서 혼자 듣는 라디오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여기 있고, 누구인가 나를 알아봐 주고,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증거.

생각해보면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연대와 희망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수많은 사람의 선택과 필요가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장소이기 때문이다. 희망도서 신청은 그 연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태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다. 그런 흔적들이 모여 이루어진 서가는, 도서관이 품고 있는 무수한 생의 온기를 묵묵히 증언하게 될 것이다.

희망도서를 신청한다는 것은, 조심스레 희망을 신청해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읽고 싶은 책의 제목을 적어 넣는 순간, 마음속 가장 어두운 자리에도 어떤 기척이 남는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에도, 적어도 이 책만큼은 꼭 올 거라는 확신. 세상이 완전히 무심하지만은 않다는, 내가 원하는 것에 누군가 응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놀랍게도, 그렇게 띄워 보낸 소망은 어느 날 문자의 알림처럼, 누군가의 응답처럼 홀연히 찾아와 손에 쥘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중요한 건 신청하는 일, 원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그런 용기를 내보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것, 생의 희망도 그렇게 신청하면 도착하는 것일지도. 다만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다. 그동안은 다른 책을 읽으며 빈칸을 채워가야 한다. 희망은 목적의 성취나 도착의 환희라기보다, 그 공백을 버티어내는 최소한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그 저항의 기척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6934000793776323
프린트 시간 : 2025년 12월 29일 17:3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