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아닌 상호 존중... 탈락의 드라마에서 연대의 서사로
OTT 리뷰 <5> 달라진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2’
비판 있었던 ‘방출 시스템’ 없애고
요리 완성도·셰프 스토리로 차별화
‘피지컬:아시아’
한국·튀르키예 등 8개국 운동인 출전
역할·전략 앞세워 협력 완성도 보여줘
2025년 12월 26일(금) 09:20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처음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던 인물이 강력한 경쟁자들을 하나씩 넘어서며 성장하고,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 수많은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서바이벌 예능을 양산해 온 익숙한 성공 공식이다.

이 공식은 늘 한 사람의 승리를 위해 수많은 탈락을 전제해 왔다. 고배를 마신 이들은 ‘우승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장치로 소비되거나 빠르게 잊혔다. 과열된 경쟁과 자극적인 언행, 선과 악의 이분법 등 여러 부작용들을 낳았다.

하지만 최근 OTT를 중심으로 서바이벌 예능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경쟁은 하되 상호 존중이 전제된다. 탈락은 ‘실력 부족’이 아니라 ‘룰과의 부조화’로 설명되고, 경쟁 이후에도 교류와 연대가 이어진다. 탈락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탈락의 드라마에서 연대의 서사로, 서바이벌의 문법이 변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 ‘피지컬: 아시아’를 통해 달라진 서바이벌 예능의 현재를 짚어본다.

넷플릭스에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가 지난 16일부터 차례로 공개되고 있다. 스타 셰프 ‘백수저’와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맞붙는 요리 서바이벌로, 시즌1의 흥행을 발판 삼아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프로그램은 계급이라는 선명한 대립을 내세웠지만, 요리의 완성도와 셰프 개인의 스토리를 비추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백수저는 노련한 전문가로, 흑수저는 자유롭고 거친 감각의 요리인으로 대비되지만 경쟁이 진행될수록 두 집단 모두 풍부한 경력과 내공을 지닌 셰프로 그려진다. 계급은 긴장을 만드는 장치일 뿐 우열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다.

시즌2는 이러한 방향성을 한층 분명히 한다. 시즌1에서 비판을 받았던 ‘방출 시스템’을 과감히 없애고, 격한 기싸움이나 자극적인 편집 대신 요리의 본질과 조리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선재스님과 ‘뉴욕에 간 돼지곰탕’의 대결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공정한 승부를 위해 나란히 채식 요리를 선택하며, 상대를 꺾기보다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 장면은 시청자들로부터 “이런 서바이벌을 보고 싶었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넷플릭스의 또 다른 서바이벌 ‘피지컬: 아시아’ 역시 변화된 문법을 공유한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피지컬: 100’을 국가 대항전 형태로 확장한 이 프로그램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몽골, 호주, 튀르키예,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8개국의 운동인들이 출전해 최고의 피지컬을 겨룬다. 개인 능력을 앞세웠던 전작과 달리 국기를 걸고 맞붙는 구조가 경쟁의 밀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국가 대항전인 만큼 승부욕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를 이길 수 있는 팀은 없다”며 도발이 오가지만, 동시에 운동인으로서의 존중 역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전설적인 복싱 선수 매니 파퀴아오가 등장하자 너도나도 먼저 악수를 청하고, UFC 레전드 로버트 휘태커를 향해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등 적대와 존경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은 오히려 보는 재미를 더한다.

팀전으로 설계된 만큼 연대의 서사는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네 종목의 점수를 합산해 최하위 팀이 탈락하는 ‘팀 대표전’에서는 개인의 실패가 곧바로 탈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 팀의 경우 최승연이 ‘오래 매달리기’에서 뒤처지며 위기에 몰렸지만, 아모띠가 ‘자루 넘기기’에서 만회하며 팀을 구해낸다.

‘난파선 운송전’과 ‘성 점령전’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 기량만 놓고 보면 약체로 평가되던 한국 팀은 역할 분담과 전략을 앞세워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둔다. 서바이벌의 긴장감은 유지되지만, 승부의 핵심은 힘의 우열이 아니라 협력의 완성도다.

‘피지컬:아시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피지컬: 아시아’는 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승까지 진출한 몽골에서는 올림픽에 준하는 관심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한국 시청자들 역시 몽골 선수들을 응원하며 국경을 넘은 연대에 호응했다. 이로 인해 한국 팀과 몽골 팀 사이의 우정이 화제가 됐고, 이는 스핀오프 프로그램 ‘피지컬: 웰컴 투 몽골’로 이어졌다.

몽골 팀 주장 어르헝바야르가 한국 팀을 몽골로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한국 팀 주장 김동현이 우승 후 몽골을 방문하겠다는 말을 실천하는 이 스핀오프는 경쟁 이후의 관계를 담는다. 승부가 끝난 뒤에도 이어지는 교류는 최근 시청자들이 서바이벌 예능에서 기대하는 변화된 지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흑백요리사2’와 ‘피지컬: 아시아’는 모두 여전히 치열한 경쟁 프로그램이다. 다만 그 경쟁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결과보다 과정, 탈락보다 태도, 승리보다 관계를 오래 남기는 방식이다. 서바이벌 예능은 이제 경쟁의 끝에서 존중과 연대를 이야기하는 장르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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