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한다”
창작 듀오 KIM/ILLI 신안 소금박물관서 19일부터 3월 19일까지 전시
2025년 12월 17일(수) 17:00
KIM/ILLI 야외 작품 설치 퍼포먼스의 한 장면.<소금 같은, 예술 제공>


신안 증도의 태평염전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을 구제하고 소금 생산 증대를 위해 조성된 곳이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은 거센 바람과 작열하는 햇빛 아래서 하루하루 소금밭을 일궜다.

피부에 맺힌 땀과 바닷물이 뒤섞여 소금이 되었고, 그 위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와 희망이 켜켜이 쌓였다. 신안의 땅이 품고 있는 기억을 예술의 언어로 풀어낸 전시가 열린다.

창작 듀오 KIM/ILLI(김슬비·크리스티안 테네프란치아 일리)는 전시 ‘땅은 우리가 아직 해독하지 못한 파장을 통해 기억한다’를 오는 19일부터 내년 3월 19일까지 신안군 증도 소금박물관에서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태평염전 아트 프로젝트 ‘소금 같은, 예술’ 2025 국제공모전 수상 작가전의 하나로 마련됐다.

12주간 증도에 머물며 작업한 KIM/ILLI는 이곳이 지닌 역사와 환경에 주목했다. 증도는 오랜 시간 노동과 채굴, 농경과 산업의 흔적이 축적된 공간이다. 작가들은 땅에 남은 침전물과 색의 변화를 시간과 환경이 지나온 흔적으로 해석했다. 땅을 단순한 자연 배경이 아닌 사람들의 경험과 시간이 스며든 기억의 공간으로 본 것이다.

전시는 물질과 영상,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관람객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뿐 아니라 쉽게 드러나지 않는 감각의 흐름을 따라 전시를 경험하게 된다.

다채널 영상 설치 작품 ‘Field Notes on (Structural) Silence: Or, How to Camouflage with Colours’는 이러한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침묵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환경과 구조의 결과로 제시된다. 영상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전시 개막에 앞서 작가들은 야외 작품 설치 과정에서 진도 씻김굿 퍼포먼스를 함께 진행했다. 태평염전을 일군 실향민들이 머물렀던 돌집 인근에서 펼쳐진 씻김굿은 이 땅에 스며든 삶의 기억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의미를 더했다.

한편 KIM/ILLI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건축과 예술,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사운드와 퍼포먼스, 영상, 설치, 리서치를 결합해 도시와 풍경, 인간과 환경 사이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KIM/ILLI는 “이번 전시는 신안이라는 장소에서 출발해 기억과 기록, 환경과 감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며 “신안의 자연과 염전의 기억 그리고 작품들이 어우러져 관람객이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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