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떠나보낸 지 1달 만에…마음 다잡고 첫 근무 나갔다 참변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희생자 빈소 ‘비통’
2025년 12월 12일(금) 17:00
12일 광주시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사고 피해자 A씨의 빈소에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한달 전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마음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다시 일을 나간 지 하루 만에 이런 참혹한 일을 겪을 줄은…”

12일 찾은 광주시 북구의 한 장례식장. 광주대표도서관 붕괴 사고로 숨진 A(48)씨의 빈소를 지키던 40년 지기 친구 이모(48)씨는 “너무도 밝고 착했던 친구였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지난 11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광주대표도서관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 당시 미장 작업자로 투입돼 2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 붕괴 사고에 휘말려 숨졌다.

이씨는 “초등학생 때 만나 40년을 다섯명이 붙어 다녔던 깨복쟁이 친구였다”며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또렷한데 이렇게 허망하게 떠났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불과 한 달여 전에도 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A씨의 홀어머니 장례를 함께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는 “세상에 다시 없을 효자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찮으신 어머니를 돌보다 혼기를 놓쳤다”며 “아예 어머니 집 근처에 방을 얻어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에 어머니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돌아가시면서 A씨는 의욕을 잃고 1달 가까이 일을 쉬고 있었다”며 “어머니께 선물했던 강아지를 데려와 돌보던 중, 강아지가 아프자 병원비라도 마련해보겠다며 다시 현장에 나간 첫 날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A씨는 사고 사흘 전 느닷없이 이씨의 회사를 찾아가 마지막 식사를 함께했다. 혼자가 된 A씨에게 이씨는 사실상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이씨는 “그때 먹은 밥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사고 소식을 듣고 A씨한테 수차례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을 친구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며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날 시청 직원 2명이 빈소를 찾아와 ‘작업자들의 실수로 사고가 났다’고 말하는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면서 “친구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고 원인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며 말 끝을 흐렸다.

A씨의 오랜 친구 김모(48)씨도 “친구를 잃은 충격과 고통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가족들이 마지막 모습을 보기 어려워해 내가 대신 봤다. 상처는 조금 있었지만 평온해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적막한 빈소에서는 이따금 가족들의 애닳는 통곡이 새어나왔다. 가족들은 “A씨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 같다”고 했다.

A씨의 매형 강영일(60)씨는 “사고 전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누나, 우리 어렸을 때 기억나냐’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더라”며 “다음날 소방서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광주로 내려오는데 곧 영안실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고 울음을 삼켰다.

강씨에게 A씨는 동생처럼 아끼던 처남이었다. 12살 차이가 무색할 만큼 싹싹하게 다가오던 A씨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웃는 모습’ 뿐이었다.

그는 “가끔 전화해 ‘좋은 신붓감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거나, ‘놀러 가면 소주 한잔 사달라’고 조르던 A였다”며 “성격이 좋아 가족은 물론 주변 동료,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고 회상했다.

A씨의 가족은 함께 매몰됐던 나머지 작업자 2명이 모두 구조되는 시점에 본격적인 장례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강씨는 “같이 사고를 당한 이들이 차디찬 공사장 바닥에 갇혀 있는데 어떻게 A씨를 먼저 보내겠냐”며 “이런 참담한 사고가 우리 가족에게 벌어져 심장이 무너져내린다. 하루빨리 현장을 수습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지난 11일 오후 2시께 광주시 서구 치평동 광주대표도서관 신축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중이던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미장공 A씨를 비롯한 작업자 4명이 건물 잔해에 매몰됐다. A씨는 한시간여만에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현재까지 2명이 구조돼 모두 사망했으며 나머지 2명에 대한 수색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5526400793233000
프린트 시간 : 2025년 12월 13일 07: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