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능과 난이도에 관련된 용어의 혼란- 김은수 광주대 명예교수
2025년 12월 09일(화) 00:20
2026학년도 수능시험 체점 결과가 발표되면서 난이도 조절 실패에 따른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영어 과목은 1등급 비율이 3.11%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었고 국어와 수학 과목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학부모님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시험이 응시자의 성적을 정확하게 변별할 수 없다면 인재를 선발하는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없다. 시험은 어려운 문제, 중간 문제, 쉬운 문제를 균형 있게 안배해야만 응분의 기능을 하게 된다. 그래서 따르는 문제가 난이도인데, 그와 관련해서 사용하는 용어가 애매하게 쓰이고 있다.

난이도(難易度)는 어려운 정도와 쉬운 정도라는 말이다. 때문에 난이도가 어려웠다거나, 난이도가 있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난이도가 변별력을 갖추었다거나,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평이(平易)한 문제라는 말은 평범하고 쉬운 문제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어려운 문제는 난해(難解)한 문제라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난이도의 쉬움과 어려움 정도의 구분을 평이도(平易度)와 난해도(難解度)라고 나누어도 될 것 같은데, 어려운 정도의 표현을 난도(難度)라고 쓰고 있다. 적합한 말은 아닐 것 같다. 더구나 한글로 ‘난도’라고 쓰다보니 혼란을 가중시킨다. 필요하면 과감하게 한자병기(漢字倂記)도 해야한다. 물론 어느 문장이든 문맥으로 이해해야 하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전후의 문장에서 평이하다와 상응하는 말은 난해하다요, 평이도에 상응하는 말은 난해도이다. 여기에 평이도(平易度)에 난도(難度)를 뒤섞어 놓으면 상식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문장은 개념의 이해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단어의 선택과 배열도 한몫한다. 물론 읽기의 운율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어떤 문장에서는 어머니를 쓸 수도 있고 아빠를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를 먼저 썼다면, 이어서 조화롭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버지이다. 아버지나 아빠나 같은 뜻이지만 같은 문장에서 어머니에 조응할 수 있는 단어는 아버지이다.

단어는 의미와 어법과 관습의 균형 속에서 생성된다. ‘건넛방’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옥집에서 마루를 사이하여 건너편에 마주하고 있는 방을 뜻한다. 즉 건너편에 있는 방, 이것이 이 말의 의미(뜻)다. 그런데 이 말은 원래 ‘건넌방’이 표준말이었다.

이 말은 마루를 ‘건너다’와 ‘방’이 합해진 말이다. 동사와 명사의 합성어이다. 원래 동사는 명사와 합해질 때 동사가 관형어로 변화하여 합해진다. 가는 사람, 말하는 사람, 웃는 사람과 같은 경우이다. 건넛방은 더 복잡해서 ‘마루 건너편에 있는 방’의 합성어이다. 하지만 사람의 언어 심리에는 언어를 간결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더군다나 이 말은 동작의 표현이 아니고 머물러 있는 현상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냥 축소하여 건넛방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言衆)은 봇집, 담뱃대처럼 건너다와 방사이에 복합명사 사이에 넣는 ‘사이시옷’을 넣어서 발음한 것이 ‘건넛방’이다.

애초에 문법학자들은 ‘건넛방’은 동사와 명사가 합해진 말이기 때문에 문법의 원리를 적용하여 ‘건넛방’을 틀린 말로 규정하고 표준어를 ‘건넌방’으로 정리하였다. 이것이 문법적인 단어구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집단(言衆)에서는 발음하기 편리한 대로 ‘건넛방’을 고집스럽게 사용하기 때문에 1988년 맞춤법 개정안에서 문법적인 원칙을 무시하고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관습을 존중하여 ‘건넛방’을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다.

한글의 한자말도 마찬가지다. 한글전용 시대라 하더라도 우리 언어 중에 어원이 한자인 말은 그 어원을 따져서, 한자말과 크게 의미를 벗어나지 않게 정리하여 사용해야만 우리말이 발전할 수 있다.

난이도(難易度)에서 쉬운 문제를 평이(平易)한 문제라고 할 때, 어려운 문제는 난해(難解)한 문제라고 하면 균형 있게 대응되는 단어가 된다. 평범한 문제와 매우(좀) 어려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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