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두 청춘’ 윤상원·박기순, 무대에서 만나다
가창의예술연구회 뮤지컬 ‘시민군 윤상원-님을 위한 행진곡’
9~10일 서빛마루문예회관…전용호 작가 대본·정유하 작곡
9~10일 서빛마루문예회관…전용호 작가 대본·정유하 작곡
![]() 창작뮤지컬 ‘시민군 윤상원-님을 위한 행진곡’이 9~10일 광주 서빛마루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진다. 출연진들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정유하 제공>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광주의 5월을 넘어 오늘의 민주주의까지 이어지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원래 두 청춘의 짧고도 뜨거운 삶에서 출발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윤상원 열사, 그리고 들불야학을 세워 노동자들의 배움터를 열고 현장을 누비다 스물한 살에 세상을 떠난 박기순 열사.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2년 재야운동가 백기완의 시에 황석영이 가사를 붙이고, 김종률이 곡을 붙여 완성한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의 실제 주인공인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삶을 조명한 창작뮤지컬 ‘시민군 윤상원-님을 위한 행진곡’이 9~10일 오후 7시30분 광주 서빛마루문화예술회관에서 관객과 만난다. 가창의예술연구회가 제작하고 (사)윤상원기념사업회, (사)들불열사기념사업회, 푸른솔합창단이 공동기획으로 참여했다.
작품은 1970년대 후반 노동현장과 야학 운동의 시간부터 1980년 5·18민주화운동, 그리고 1982년 망월동에서 치러진 영혼결혼식까지 역사적 장면들을 한 편의 드라마로 엮어간다.
1978년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던 윤상원 열사는 민주화운동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광주로 내려온다. 그는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자의 삶을 몸으로 겪고, 야학 강학으로 현장을 조직하며 점점 더 깊이 시대의 변곡점으로 걸어 들어간다.
같은 시기, 전남대 학생이던 박기순 열사는 학교에서 쫓겨난 뒤 노동자들의 배움터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광천동 성당에 ‘들불야학’을 연다. 그는 기성 교육 시스템에서 밀려난 노동자들과 함께 새 교육의 형식을 고민한다.
윤상원은 박기순의 권유로 들불야학 책임 강학을 맡으며 동지이자 연인으로 서로의 삶을 비추는 존재가 된다. 공연은 두 사람이 함께 꾸던 꿈과 웃음, 그리고 짧게 스쳐간 청춘의 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그러나 같은 해 겨울 박기순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윤상원의 삶에는 지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긴다. 무대 위에서 이 장면은 남겨진 자의 죄책감과 슬픔, 그럼에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책임감이 교차하는 장면으로 펼쳐진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참한 학살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윤상원은 거리로 나선다. 그는 녹두서점과 들불야학, YWCA 등을 거점으로 동료들과 함께 대안언론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하며 왜곡된 보도에 맞서는 항쟁의 입과 눈이 된다. 이후 민주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을 맡아 도청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산화한다.
공연은 이 과정을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버텨낸 한 청년의 내면을 따라가는 서사로 풀어낸다.
공연의 마지막은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현실과 초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을 통해 슬픔과 사랑, 애도와 다짐이 뒤섞인 광주의 기억을 하나의 노래로 응축해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이번 뮤지컬은 1978년 들불야학 강학으로 함께 활동했던 전용호 작가가 집필한 대본을 바탕으로 한다. 5월항쟁 당시 투사회보 제작·배포로 투옥되었고, 이후 5·18 관련 소설과 극작을 꾸준히 이어온 그는 “윤상원은 특별한 영웅이라기보다 자신의 시대에 책임 있게 응답한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인식을 대본 곳곳에 녹여냈다.
음악은 5·18과 민중가요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유하 작곡가가 맡았다. ‘야학에 오세요’, ‘투사회보를 만들자’, ‘함께 가자, 희망의 내일로’ 등 넘버들은 집회가·민중가요의 선율을 연상시키면서도 현대 뮤지컬 문법을 입혀 관객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했다.
정 작곡가는 “그날의 절박함을 그대로 옮겨놓기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이 오늘의 청년들에게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먼저 생각했다”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몇몇 장면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꺼내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12·3 비상계엄 국면에서 우리 사회를 지켜준 힘은 5·18의 기억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뮤지컬은 오월을 비극으로만 소비하기보다 산화한 영령들과 그 정신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곁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광주의 5월을 넘어 오늘의 민주주의까지 이어지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원래 두 청춘의 짧고도 뜨거운 삶에서 출발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윤상원 열사, 그리고 들불야학을 세워 노동자들의 배움터를 열고 현장을 누비다 스물한 살에 세상을 떠난 박기순 열사.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2년 재야운동가 백기완의 시에 황석영이 가사를 붙이고, 김종률이 곡을 붙여 완성한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1978년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던 윤상원 열사는 민주화운동을 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광주로 내려온다. 그는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자의 삶을 몸으로 겪고, 야학 강학으로 현장을 조직하며 점점 더 깊이 시대의 변곡점으로 걸어 들어간다.
같은 시기, 전남대 학생이던 박기순 열사는 학교에서 쫓겨난 뒤 노동자들의 배움터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광천동 성당에 ‘들불야학’을 연다. 그는 기성 교육 시스템에서 밀려난 노동자들과 함께 새 교육의 형식을 고민한다.
윤상원은 박기순의 권유로 들불야학 책임 강학을 맡으며 동지이자 연인으로 서로의 삶을 비추는 존재가 된다. 공연은 두 사람이 함께 꾸던 꿈과 웃음, 그리고 짧게 스쳐간 청춘의 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그러나 같은 해 겨울 박기순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윤상원의 삶에는 지울 수 없는 빈자리가 생긴다. 무대 위에서 이 장면은 남겨진 자의 죄책감과 슬픔, 그럼에도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책임감이 교차하는 장면으로 펼쳐진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참한 학살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윤상원은 거리로 나선다. 그는 녹두서점과 들불야학, YWCA 등을 거점으로 동료들과 함께 대안언론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하며 왜곡된 보도에 맞서는 항쟁의 입과 눈이 된다. 이후 민주시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을 맡아 도청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산화한다.
공연은 이 과정을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버텨낸 한 청년의 내면을 따라가는 서사로 풀어낸다.
공연의 마지막은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현실과 초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면을 통해 슬픔과 사랑, 애도와 다짐이 뒤섞인 광주의 기억을 하나의 노래로 응축해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 창작뮤지컬 ‘시민군 윤상원-님을 위한 행진곡’이 9~10일 광주 서빛마루문화예술회관에서 펼쳐진다. 출연진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 <정유하 제공> |
음악은 5·18과 민중가요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정유하 작곡가가 맡았다. ‘야학에 오세요’, ‘투사회보를 만들자’, ‘함께 가자, 희망의 내일로’ 등 넘버들은 집회가·민중가요의 선율을 연상시키면서도 현대 뮤지컬 문법을 입혀 관객이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했다.
정 작곡가는 “그날의 절박함을 그대로 옮겨놓기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이 오늘의 청년들에게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 먼저 생각했다”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몇몇 장면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꺼내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12·3 비상계엄 국면에서 우리 사회를 지켜준 힘은 5·18의 기억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뮤지컬은 오월을 비극으로만 소비하기보다 산화한 영령들과 그 정신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곁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