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그림의 위로, 미술관 송년회
‘수련과 샹들리에’, ‘루이스 부르조아’, ‘Floating View 25’전 등 눈길
2025년 12월 07일(일) 15:55
국립현대미술관이 해외 명작 시리즈 일환으로 기획한 이번 ‘수련과 샹들리에’ 전에는 니키 드 생팔의 ‘검은 나나’를 비롯해 바바라 크루거의 ‘모욕하라, 비난하라’, 페르난도 보테로의 ‘춤추는 사람들’ 등 44점이 선보이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25년이 20여일 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동의 시간이었다. 특히 수년째 침체된 경기침체와 고물가는 추운 날씨로 움츠러든 마음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지난 1년을 되돌아 보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면 어떨까.

요즘 같은 연말연시에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아 헛헛한 마음을 달래는 것도 좋다. 마침 세밑을 겨냥해 국립현대미술관과천관, 호암미술관, 보성우종미술관이 다양한 주제의 대규모 전시회를 기획해 관람객들을 손짓하고 있다. 전시장 나들이는 각박한 세상살이로 잠시 잊고 살았던 일상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한해의 끄트머리인 12월,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미술관에서 송년회를 보내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1원형전시실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00x200.5cm. 1917~192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수련과 샹들리에’

과천관 1층에 들어서자 정중앙에 설치된 대형 원형 기둥이 눈에 띈다. 다른 미술관에서는 보기 힘든 원형 전시실로 기둥을 둘러싼 삼각형의 긴 의자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는 관람객들이 앉아 있다. 하지만 그냥 멍하니 앉아 쉬고 있는 게 아니다. 바로 맞은 편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년)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작품과 함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휴식과 명상을 동시에 만끽하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특별한 주제나 연대기적 분류 대신 44점의 작품 한 점, 한 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시연출한 의도를 엿보게 한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무대인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관(원형전시실)은 서양미술 100년을 되돌아 보는 ‘수련과 샹들리에’(10월2일~2027년 1월3일)전을 개최해 구름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MMCA 해외명작 시리즈인 이번 기획전은 19~20세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해외거장 33명의 작품 44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 주제인 ‘수련과 샹들리에’는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대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대표작 ‘수련이 있는 연못’과 20세기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작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68)의 작품 ‘검은 샹들리에’(2017~2021)에서 따왔다. 제목 그대로 모네에서부터 아이웨이웨이까지 100년의 시간 차이가 있는 두 작품을 축으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페르난도 보테로, 안젤름 키퍼, 마르셀 뒤샹, 니키 드 생팔, 앤디워홀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전시장 한 가운데 자리한 원형을 중심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풍만한 인체를 강조한 두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콜롬비아 출신의 페르난도 보테로의 ‘춤추는 사람들’(2000)과 니키드 생팔의 ‘검은 나나’(Black Nana, 291x172x100cm, 1967)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라틴댄스를 즐기고 있는 남녀의 모습은 남미 특유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으며 3m에 가까운 거대한 조형물 ‘검은 나나’는 임신한 친구의 몸을 소재로 생명감 넘치는 여성성을 통해 날씬한 몸매를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통념을 비웃는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 3층 전시실에는 한국미술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근현대미술’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남향집’, ‘처의상’ 등 15점을 전시하고 있는 ‘오지호 방’.
원형전시실을 나와 2층의 전시실로 향하면 한국 근대미술의 향연을 관람할 수 있다.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과 ‘한국근현대미술 II’다.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첫 기획전 ‘한국근대미술 60년전’ 이후 53년만에 한국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집중 조망한 자리로, 1, 2부로 나눠 오는 2027년 초까지 개최할 예정이다.

먼저 ‘한국근현대미술 I’은 대한제국과 개화기를 지나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흐름 속에 태동한 근현대미술 작가 70명의 작품 145점을 선보이고 있다. 대한제국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기를 ‘새로운 시선의 등장’, ‘근대서화의 모색’, ‘미술/미술가 개념의 등장’, ‘조선의 삶을 그리다’, ‘한국전쟁과 조형실험’, ‘가족을 그리며’ 등 9개의 소주제로 나눠 총 9부로 구성했다.

특히 화순출신인 오지호 화백을 비롯 박래현·김기창 부부, 이중섭, 윤형근, 김환기 등 6인을 집중 조명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전시장에 5개의 ‘작가의 방’을 꾸며 밀도를 높였다. 전시 4부의 첫번째 작가의 방인 오지호 공간에서는 한국 근대서양화단의 인상주의 선구자 오지호(1905~1982)의 예술세계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전시장 속 전시장’의 콘셉트인 오지호 방은 국가등록문화재인 ‘남향집’(1939)를 필두로 ‘처의 상’(1936), ‘열대어’(1964), 미완성으로 남은 유작 ‘세네갈의 소년들’(1985) 등 대표작 15점으로 꾸며졌다.

루이스 부르조아의 거미 조각상 (Maman) 연작 가운데 하나인 ‘웅크린 거미’(2003).
◇호암미술관 ‘루이스 부르조아’ 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옆에 자리한 호암미술관은 한국 고미술의 정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연 속 미술관이다. 미술관 앞에 서면 고풍스런 한옥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 인상적이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평생 수집한 국보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조선 시대 정원 양식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방대한 고미술 컬렉션을 지닌 호암미술관이 올해 색다른 기획전을 내놓아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거미’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루이스 부르조아:덧없고 영원한’전(8월 30일~2026년 1월 4일)이다.

전시 제목인 ‘덧없고 영원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전시는 루이스 부르조아가 평생 탐구해온 기억, 트라우마, 신체, 시간과 관련된 내면 심리의 지형도를 반영한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열리는 루이스 부르조아의 최대 규모의 회고전으로 회화, 조각, 설치 등 총 106점을 아우르고 있다. 1940년대 초기 회화와 ‘인물’(Personages) 연작부터 1990년대 시작된 ‘밀실’(Cell)연작, 말년의 패브릭 작업, 시적인 드로잉부터 실내를 가득 채우는 대형 설치작품에 이르기까지 70여년에 걸친 작가의 작업여정을 따라가며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화강암을 사람 눈 모양으로 깎아 만든 루이스 부르조아의 ‘아이 벤치III’(Eye Bench, 1996~1997).
미술관에 들어서면 1층과 2층 계단사이에 매달려 있는 남녀 한쌍이 서로를 껴앉고 있는 거대한 설치작품 ‘커플’(Couple)이 반긴다. 남성과 여성, 아버지와 어머니의 갈등과 이를 화해시켜고 통합하는 이상적인 결합을 보여주는 후기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의식과 무의식의 이중 구조를 통해 역동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꾸민 게 특징이다.

미술관을 나오면 또 하나의 ‘전시’가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미술관을 품고 있는 정원 곳곳에 설치된 루이스 부르조아의 작품 ‘거미’와 한국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89) ‘실렌티움’(묵시암)이다. 지난 11월 4일 공개된 ‘실렌티움’은 라틴어로 ‘침묵’(Silentium)을 뜻하며, 한국어 명칭 묵시암(默視庵)은 ‘고요함 속에서 바라본다’는 의미다.

김유섭 작가의 ‘Inside of western Light’(2024).
◇우종미술관 ‘Floating View 25’

차와 소리의 고장인 보성군에 자리한 우종미술관(보성군 조성면 조성 3길 338)은 보성 컨트리클럽하우스 옆에 자리한 ‘골프장 옆 미술관’이다. 시골미술관이라고 해서 만만히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민화가’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은 물론 한국 서양화단의 선구자 오지호, 이우환, 장욱진, 김창렬, 천경자, 오승윤, 이대원 등 한점 한점이 ‘명작’인 1600여점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올해 첫 기획전으로 개최한 ‘Floating View 25’(11월 7일~12월 14일)은 서양화가 김유섭이 40년 동안 축적해온 회화적 사유와 물성을 바탕으로 시간과 기억, 감정이 화면위에 겹겹이 쌓여 가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전시 제목인 ‘Floating View 25’는 말 그대로 떠오르고, 머물고, 사라지는 감각의 흐름 속에서 포착된 회화적 풍경을 의미한다.

보성우종미술관에서 관람객이 김유섭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떠다니는 감정과 기억의 조각들이 화면 위에 머무는 순간을 담아내며 회화가 시간과 물질의 흔적을 품은 공간이자 감각의 창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2층에는 1층 상설전과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우종 미술관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고미술의 향연이다. 미술관의 설립자인 박용하(76) 여수 와이엔텍 회장이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50년 간 고미술과 유물들을 수집해 온 명품들을 엄선해 놓았다. 연중 상설로 전시되는 이 공간에는 보물 제875호인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권7~10)을 비롯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물과 고미술품, 화려한 일본 근·현대 도자기와 공예품이 망라돼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박진현 기자, 국립현대미술관·삼성문화재단 제공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65090549792944316
프린트 시간 : 2025년 12월 08일 08:0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