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악마적인 시험의 본질 -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5년 11월 28일(금) 00:20
가을인가 싶더니, 갑작스런 추위와 당황스러운 기온은 마치 우리 미래 삶의 불확실성을 닮았다. 우리는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구조적으로 잘못 자리잡은 가치들을 좇느라 습관적인 잘못에 쉽게 안주하고 본질을 잃어버리는 약함을 지니고 살아간다. 마치 몸에 좋은 것을 헤아릴 수 없이 섭취하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역설처럼,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좇다가 영혼의 빈곤에 빠지는 구조적인 모순 속에 우리를 가두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 중 하나는 ‘운전하느라 바빠서 기름 넣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달리는 행위(수단)에만 치중하다가 달릴 수 있게 하는 근원적인 힘(본질)을 무시하여 벌어지는 어리석음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 이 물질만능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늘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외적이고 부수적인 것에 치중하는 유혹에 노출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혹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운전하다가 쉽게 신호를 위반하는 행위는 결국 소중한 생명을 내동댕이쳐 의미 마저도 잃어버리는 죽음에 이른다.

우리가 삶의 궁극적인 가치와 본질을 일시적이고 사적인 이익이나 생존 욕구에 내어줄 때 벌어지는 영적 사고, 곧 존재의 근본적인 가치관이 무너지는 심각한 상태와도 같다. 루카 복음 23장 35절부터 43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통해 이 본질적인 유혹의 극치를 보여준다.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 하나가 예수님께 외친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 이 외침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이 순간, 예수님과 똑같은 극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인간의 절규가 하느님의 아들을 향해 공격한다.

이 글의 주제에서 말하듯, 이는 ‘가장 악마적인 시험’이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생존에 대한 갈망과 고통 해소 욕구를 동원하여, 예수님께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구원 계획을 포기하고 사적인 이익(고통으로부터의 즉각적인 해방)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수단화하라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현대인의 어리석음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생존을 위한 수단화를 위해서 우리는 물질적 안정을 위해 생명 자체를 도구로 사용할 때가 많다. 생명보다 몸에 걸치는 옷이나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권력과 인정의 유혹에서 우리는 권력과 영광, 혹은 타인의 인정(과시욕)을 쫓기 위해 본질적인 가치에 쉽게 타협한다. 존재 자체로 이미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인정 욕구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목적이 아닌 성공과 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차별과 짓밟음에서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외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기준으로 차별하고 열등과 우월을 나누어 그 존재론적 가치를 짓밟아 버린다. 이는 십자가의 한 죄인이 예수님의 능력만을 공적인 영역이 아닌 매우 개인적으로 사사로이 이용하려 했던 유혹과 다르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 강박, 부와 권력에 대한 탐닉 그리고 끝없는 자기 증명의 압력과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바로 이 ‘가장 악마적인 시험’의 변형된 형태가 아닐까.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데 그 행복을 위해 더 많이 가지고, 채우고, 얻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비워냈을 때 주어지는 영적인 선물이다. 그것은 세상의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가치이며 최종 목적이다. 우리 역시 자기 자신을 낮추고 포기하며 세상이 외면하는 가장 낮은 사람들, 즉 가난하고 소외되고 도움이 없으면 생명을 장담하지 못하는 분들과 동행할 때 이 시대의 어떤 악마적인 시험에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 안에 굳건히 설 수 있다.

우리를 가장 깊이 흔드는 유혹은 우리 자신의 고통과 생존 욕구에서 비롯되며 이는 우리를 하느님의 뜻, 사람들과의 진실한 관계에서 멀어지게 하여 우리 존재 자체를 수단으로 전락시키려는 것이다. 본질을 붙잡고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나눔과 사랑을 통해 비움의 행복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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