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한담(百歲時代 閑談) - 류진창 ㈜와이드팜 회장·수필가
2025년 11월 25일(화) 00:20
철 지난 국화 향기가 초겨울을 맞이한다. 겨울 추위가 아직 매섭지 않은 며칠 전 오랫동안 소원했던 선배분한테서 제철 추어탕이나 한 그릇 하자는 반가운 전화가 왔다. 애주가인 그 선배에게 소주잔이 더 낫지 않겠냐는 이심전심으로 인근 대폿집으로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뒤로하고 우선 ‘건강이 최고야!’ 하며 첫 잔을 부딪쳤다.

이제는 우리사회에서 백세라는 말이 생소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첨단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 그리고 정부의 건강 증진정책의 영향으로 난치병의 조기발견과 치료는 곧, 불치의 영역을 축소시키면서 100세 수를 가능케 하는 장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대별 평균 수명을 보면 삼국시대에는 28세였고 그 후 조선 중기에는 37세 그리고 조선 말기에는 45세에 이르다가 급기야 2000년 대에는 76세, 2024년에는 83.6세를 기록할 만큼 괄목한 수명의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단명 시대에는 콜레라 천연두 같은 전염병과 빈곤에서 오는 기아로 인한 사망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했을 것이다.

이제는 장수에 따른 노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분주한 일상을 사는 자식들에게 긴 병환의 부모님이 계신 집안은 병간호와 수발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진다. 그래서 병환의 부모님을 돌보게 하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라는 전문 의료시설이 성업 중에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설이 인용되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쓰일 예산은 매년 7%대까지 꾸준히 늘었다. 2024년도의 사회복지예산 21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가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정든 내 집이며 자식 손자 친지 등 만상(萬象)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을 포기한 채 낯선 요양 시설에서 절망의 나날을 외롭게 보내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자식들은 가슴 미어지는 처절한 슬픔에 통곡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영원히 이별하는 장례식장에서 망인의 연세를 묻는 조문객에게 “천수를 다하셨습니다”라며 낙낙한 표정의 상주들을 가끔 보게 되는 요즘 세태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를 백세시대가 낳은 어쩔 수 없는 단면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풍속도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애물의 백세시대가 될지언정 최소한의 장례기간만이라도 진정으로 나를 낳아주신 부모 잃은 슬픔에 통곡하며 애통에 잠겨있어야 한다. 관혼상제 중 상례를 가장 엄숙히 여기는 까닭은 한 인간의 일대기를 총정리하는 지엄한 종막의 장이기 때문이다.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 했다. 증자(曾子)는 부모님을 가까이 모시며 걱정 끼치지 않는 일을 그 첫 번째 효라 말씀하셨다. 효행에 대하여 각론이 있을 수 있으나 부모님께 근심을 드리지 않는 것이 담백한 의미의 효도라 생각한다. 고대 중국에서 80세 된 로래자(老萊子)는 노망한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때때옷을 입고 어릿광대춤을 추었다. 후대 사람들이 그를 효성(孝聖)이라 칭송하는 까닭은 노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자식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부모님을 가까이 모시며 봉양하는 일이 바람직한 효도라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핵가족 중심사회로 변천되는 현대에서는 지근(至近)에서 봉양하는 효도는 공간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 이를 불효라 이르기에는 억울함이 있을 것이다. 다만 얼마든지 편리하게 발달한 교통과 통신이 있으니 종종 찾아뵙고 살펴서 노부모님을 외로운 백세시대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바람직한 자식의 소박한 효도일 것이다.

오직 자식에게 의지하며 자식 자랑이 전부가 되는 노구의 부모님께 자식은 든든한 후견인이다. 부모의 존재가치를 알리는 소중함이 자식에 있음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 노령의 부모님 또한 가시는 그날까지 자식에게 천양의 금은보화를 남겨 주는 것보다 병약으로 신세 지지 않는 건강한 모습의 체력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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