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들
ACC 10주년 기념 25일부터 전시
중앙아시아 이동·교류 유산 조명
우즈벡·키르기 등 수집 자료 소개
2025년 11월 24일(월) 19:05
ACC는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중앙아시아 생활과 문화를 다채롭게 조명하는 상설전 ‘길 위의 노마드’를 중앙아시아박물관에서 연다. 화려한 도자기(왼쪽).
중앙아시아 천막집인 ‘유르트’(게르)에 들어서면 일반적인 생활 필수품이 구비돼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침대는 물론 간단한 싱크대, 탁자 등 웬만한 일상 도구들은 갖춰져 있어 초원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소박함과 검박함, 실용성을 강조한 공간이다.

지붕 안쪽을 여러 개 장대가 견고하게 떠받치고 있는 돔형 구조는 특히 강추위와 비바람을 요긴하게 막아준다. 문의 방향은 각각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몽골 게르는 남향, 키르기스 유르탄은 동향이다. 서쪽은 남성의 공간이며 동쪽은 여성의 공간으로 구분돼 있어 전통적인 질서를 가늠할 수 있다.

국내 최초 개관한 중앙아시아박물관 중앙아시아실에서 중앙아시아 생활과 문화를 다채롭게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특히 이번 중앙아시아실 오픈과 전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김상욱, ACC) 개관 10주년(11월 25일)을 기념해 마련돼 의미가 있다.

ACC는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중앙아시아 생활과 문화를 다채롭게 조명하는 상설전 ‘길 위의 노마드’를 중앙아시아박물관에서 연다. 천막집 유르트(게르).
전시 주제는 ‘길 위의 노마드’. 유목민들의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노마드’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동해야 하는, 정주하지 않는 삶이 바로 ‘노마드 정신’이다. 오늘날 노마드는 철학과 문학, 예술 분야의 새로운 실험정신, 경계를 뛰어넘는 창의성을 거론할 때 인용되는 키워드다.

김상욱 전당장은 “지난해 개편된 동남아시아실 ‘몬순으로 열린 세계’는 해상 실크로드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이번 전시는 육로 실크로드를 통해 이루어졌던 교역과 문명의 다채로운 모습들을 조명한다”고 전시 의미를 전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사막과 초원, 오아시스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장소적 특징을 내재한다. 유목민의 삶 외에도 당시의 대상들, 이들이 머물렀던 숙소, 말과 낙타 등 동물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심효윤 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아시아문화박물관 중앙아시아실 조성을 계기로 우즈베키스탄 문화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시와 이옥련 한중아친선협회 회장으로부터 기증받은 자료를 소개한다”면서 “또한 우리나라 속 작은 중앙아시아라고 불리는 ‘중앙아시아 거리’(서울시 광화동 소재)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일상적인 삶을 조명한다”고 의미를 전했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중앙아시아 이동과 교류의 유산’이라는 부제에 맞춰 펼쳐진다.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직물 ‘수자니’
1부 ‘카라반의 숨결이 쉬어간 자리’는 대상들의 숙소를 재현했다. 카라반은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을 건너 숙소에 도착한 상인들은 머무르는 장소다. 가운데 중앙정원(중정)이 있는데 낮에는 파란 하늘과 구름이, 밤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깃든다. 카라반은 머무름과 떠남의 경계를 뜻하며 한편으로 ‘노마드’와 상통된다.

교역이 이루어지던 시장을 매개로 유목민들의 문화를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공간도 있다. 2부 ‘교역이 꽃피는 곳, 바자르’는 시장을 초점화했다. 시장이라는 뜻의 ‘바자르’는 문화가 응결되는 곳이자 사람들의 결집소다. 다양한 향신료, 직물, 세밀화, 목공예품, 도자기, 악기, 과일 등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품목들은 당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테르메즈 등 도시가 교류의 중심지였으며 이국의 땅에서 온 상인들도 많았다.

대상들이 쉬어가는 카라반
3부 ‘초원, 자연과 조율하는 삶’은 유목민의 생활상을 바탕으로 노마디즘의 의미를 확장해 살펴본다.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초원의 삶은 인간과 동물,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전제한다.

특히 말은 단순한 동물이 아닌 동반자로 인식된다. “몽골인은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말 안장만은 남에게 팔지 않는다”, “발굽에 흠이 없는 준마는 없고, 날개에 상처 없는 매도 없다”는 격언이 이를 방증한다. 중요한 자산인 말, 안장, 말젖을 비롯해 말과 관련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한편 25일 오후 2시 30분 국제회의실에서 ACC 개관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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