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로그] 남도의 소금, 신안 증도
소금박물관·소금항 카페·소금동굴…‘소금투어’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천혜의 자연환경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작품 관람까지
2025년 11월 22일(토) 15:00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이 구절은 ‘빛처럼 어둠을 밝히고 소금처럼 세상의 부패를 막으라’는 의미로 읽히곤 한다.

신기하게도 소금은 여러 문화권에서 정화와 보호의 상징이었다.

소금박물관 내 ‘소금과 세계의 정화’ 섹션 설명 중 일부.
모로코에서는 밤길을 다닐 때 몸에 소금을 지녀 액운을 쫓았고, 고대 로마인들은 소금이 질병을 치료한다고 믿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패를 막는 힘 때문에 소금을 우정·성실·맹세의 상징으로 여겼다.

한국에도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풍습이 남아있다.

문화는 달라도 믿음은 비슷했다. 소금은 정화하고 지켜내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금 같은 곳’은 어디일까.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다.

남도의 끝자락,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바람, 햇빛 속에서 소금이 빚어지는 곳, 신안군 증도다.

이 섬은 그 자체로 소금처럼 ‘맑아지는 여행’을 선물한다.

태평염전 천일염 결정지.
◇태평염전에서 만나는 ‘소금의 시간’

증도는 국내 단일 염전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태평염전이 있는 섬이다.

이 태평염전을 중심으로 여행 코스를 짜면, 자연스럽게 ‘소금투어’가 완성된다.

태평염전 인근에는 소금박물관, 소금항 카페·함초식당, 소금동굴 힐링센터, 소금밭 낙조전망대 등 ‘소금’을 테마로 한 다양한 관광지가 모여있다.

소금박물관에서 소금의 역사와 가치를 배우고, 소금항 카페에서 천일염이 들어간 간식을 맛보고, 소금동굴 힐링센터에서 피부와 호흡으로 천일염의 항균효과를 체험할 수 있다. 태평염전에서 천일염의 탄생과정을 지켜보고, 소금밭 낙조전망대에서는 광활하게 펼쳐진 염전과 그 위로 넓게 퍼지는 낙조를 구경할 수 있다.

이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소금을 오감으로 느끼고, 자연스럽게 그 소금을 만드는 증도 만의 시간에 발맞추게 된다.

이곳의 천일염은 바닷물과 햇빛, 바람, 그리고 기다림. 이 네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

염전 위로 햇빛이 내려앉아 반짝이는 장면을 마주하면, ‘정화’라는 상징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투명하게 비치는 염전 위로 부는 기분 좋은 해풍을 맞고 서 있으면, 바람과 햇빛에 말라가는 천일염처럼 어느새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기분까지 든다.

짱뚱어 다리 밑 갯벌의 짱뚱어.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느림’의 가치를 지켜온 곳

증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이 밖에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갯벌도립공원, 국가습지보호지역, 국제 람사르 습지에 지정되는 등 ‘자연의 시간이 온전히 보존된 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태평염전 인근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염생식물원인 태평염생식물원이 있다. 이곳에서는 함초, 칠면초 등 70여 종의 염생식물 군락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탐방로를 쭉 따라 걸어가면 염생식물 외에도 짱뚱어, 칠게, 고동 등 다양한 갯벌 생물들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갯벌 생물을 더 관찰하고 싶다면 짱뚱어 다리를 방문해도 좋다.

짱뚱어 다리는 갯벌 위에 설치된 470m의 목교로, 이곳에선 수많은 갯벌 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청정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짱뚱어가 펄쩍펄쩍 뛰노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농게, 칠게, 갯지렁이가 분주히 드나드는 것도 구경할 수 있다. 짱뚱어 다리를 건너며, 다리 아래의 강렬한 생명력을 마주하다 보면 바다의 오염물질을 정화해 이 생명들을 보존해 왔을 갯벌의 시간이 느껴진다.

그리고 느림의 미학을 통해 그 정화의 힘을 유지하는 ‘슬로시티’로서의 증도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소금박물관 전시실에 설치된 전희경의 ‘Mud Drawing’.
◇소금 한 꼬집 같은 예술, 증도에 맛을 더하는 ‘소금 같은, 예술’

‘소금 같은, 예술’은 태평염전이 운영하고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외 예술가들은 증도에서 12주 정도를 지내며 염전·소금·바다·햇빛·갯벌 등 이 섬이 가진 자연환경을 토대로 작품을 만든다.

완성된 작품들은 소금박물관 전시실과 소금박물관 인근 야외전시 구역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조화’다.

소금박물관 건물은 1953년 지어진 석조 소금창고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건물 내에 전시된 작품들은 석조 소금창고의 경관과 아주 조화롭게 어울린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증도의 태도가 고스란히 닮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전시다.

야외에 설치된 작품들 또한 증도의 풍경 안에 슬며시 녹아든다.

증도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은 자연의 풍경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미묘하게 섬의 분위기를 변화시킨다.

마치 소금이 음식의 맛을 단숨에 바꾸지는 않지만, 한 꼬집 더해졌을 때 비로소 풍미가 살아나는 것처럼…. ‘소금 같은, 예술’은 증도의 자연환경을 더 깊고 풍성하게 느끼게 해준다.

소금밭 낙조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여행

빠르게 지나가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을까.

맑은 공기, 깨끗한 바다, 빛·소음 공해가 없는 밤과 같은 것들 말이다.

슬로 시티 증도는 느리게 가며 우리가 놓친 것들을 착실히 지키고 있는 섬이다.

넓은 갯벌은 오염을 정화하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은 조용히 생태계를 이어간다.

염전 위를 스치는 바람, 바다와 태양이 만들어내는 소금의 빛깔, 해가 진 뒤 찾아오는 깜깜한 밤과 별의 반짝임.

증도는 여행자에게 말한다.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고.

소금처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가치, 그 느린 시간의 힘을 이 섬에서 다시 배운다.

/신안 글·사진·영상=설혜경 기자 sir@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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