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끝자락-김 용택 시인
2025년 11월 21일(금) 00:20
아침에 안개가 마을에 가득하다. 가을 아침 안개가 짙은 날이면 그날 날씨는 좋다. 햇살이 맑고 강하고 바람이 좋아 회관 마당에 가을 곡식 널기 좋은 날이다. 아침 산책은 마을만 한 바퀴 돌기로 한다. 마을 위쪽 길로 걸었다. 집 앞 텃밭에 큰 집 형수가 서리태를 털고 있다. 콩대를 걷어 높이 쌓아 놓고 콩을 털고 있어서 형수님은 보이지 않고, 콩대 두드리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렸다. 콩대 너머로 머리만 보인다. 종길이 아재네 집 마당에 불이 켜져 있다. 딸이 와서 어제부터 조금 이른 김장을 하고 있다. 이른 아침인데 사람 말소리가 집안에서 들린다. 마을에 사람 말소리가, 그것도 젊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마을 어딘가에서 들리면 반갑다. 종길이 아재 집 앞을 지나 강변 차도로 내려갔다. 안개 때문에 마을 앞 강 건너 복두 농막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오리들의 꽥꽥 소리가 들린다. 오리들은 새벽에 일어나 먹이를 찾는다. 징검다리 쪽에서 희미하게 오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올해 오리들이 80여 마리가 날아와 마을 앞 강물이 활기차고 또 평화롭다. 머리를 강물 속에 집어넣고 궁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빨간 발과 짧은 꽁지로 허공 속을 버둥거리며 먹이를 찾는다. 오리들의 부리는 갈수록 험하게 금이 가고 헐어간다. 오리가 모여 먹이를 찾는 그 부근에는 학 두어 마리가 고개를 쑥 빼고 돌멩이 위에 앉아 있다. 오리들이 주둥이로 물속 자갈들을 뒤적여 다슬기와 고기를 잡을 때, 도망가는 고기들을 노린다. 그 부근에 물총새도 학과 오리에 쫓기는 물고기들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마을 앞 강변엔 강둑공사가 한창이다. 공사판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 인부들이 하얀 헬멧을 쓰고 모여 서서 무슨 구호를 크게 외친다. 아침마다 보는 풍경이다. 인부들의 안전한 하루의 일과를 다짐하는 구호일 것이다.

마을 끝 강 건너에는 점순 부부가 살고 희수 부부가 농막을 짓고 이따금 내려온다. 다시 마을 길로 들어섰다. 양식이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전주 누나네 식당으로 출근한다. 양식이 집을 지나 빈집 하나를 만난다. 올해 이 집에 사는 현선이가 생을 마감하였다. 아들이 죽자, 어머니는 딸네 집으로 가서 집이 비었다.

떨어진 은행잎이 마당에 노랗다. 현선이네 집을 지난다. 바로 종우네 집이다. 종우는 서울에서 살다가 올해 귀향했다. 마을 뒤 산 넘어 산을 개간하였다. 종우네 집 앞에 경기네 집이다. 경기도 올해 귀촌했다. 처가 땅에 집을 짓고 부부가 산다. 부지런한 부부는 온갖 과수와 채소를 텃밭에 가꾼다. 종우와 경기 부부는 마을의 활력이 되어 가고 있다. 이따금 경기네 집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보이고 큰 소리로 웃는 소리가 마을을 살린다. 마을 사람들 모두 좋아한다.

경기네 집 지나면 종호네 집이다. 빈집 마당에 마른 풀들이 키가 넘게 자라서 말라 쓰러졌다. 한 집 건너 주성이 엄마가 혼자 살다 몸이 아파 병원 가셨다. 아마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 마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회관 마당이다. 모든 곡식을 마무리한 회관 마당은 이제 서리태만 남았다.

작은 마을이어서 많은 농사는 짓지 않았지만 그래도 곡식은 종류별로 모두 이 마당에서 마무리되어 더러 팔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회관을 지나면 우리 집안의 큰집이다. 형수님 혼자 사시다가 딸과 사위가 집을 고쳐 들어와 산다. 도시에서 일을 하고 머물기도 하지만, 거의 이 집에 와서 산다. 우리 마을 사람이 되어 간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시작된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하루하루 일상은 이웃 마을이나 고을이나 나라에 해가 되고 나라를 어지럽힐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제는 마을 노인회에서 순창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었다. 지난 1년 동안 살아 온 노고가 따듯하게 위로 되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 마을의 가장 큰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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