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과 산업사회 - 백승종 지음
2025년 11월 21일(금) 00:20
“조선은 유교사상에 갇혀 근대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오늘날 유교는 가부장제·권위주의·연고주의의 뿌리로 지목되며 극복해야 할 구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정신적 토대였던 사상을 이렇게 단순히 규정할 수 있을까. 전통은 근대의 걸림돌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동력이었을까.

역사학자 백승종이 쓴 ‘유학과 산업사회’는 유교를 근대화의 장애물로만 보던 통념을 뒤집는다. 근면·절제·책임·공동체를 중시하는 유교적 규범이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윤리와 자연스럽게 맞물렸고, 해방 이후 한국이 빠르게 산업사회로 전환할 수 있었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1장은 서구 산업사회의 기원을 따라간다. 칼뱅주의 노동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했다는 베버의 분석을 바탕으로 개신교 윤리와 서구 산업화가 어떤 경로로 연결됐는지 살핀다. 2장은 조선을 움직인 유학의 구조를 조명한다. 대동사회를 향한 이상, 왕과 신하가 함께 다스린다는 ‘공치’의 정치철학, ‘조선왕조실록’으로 대표되는 기록 문화와 교육 열기가 어떻게 지식과 규범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냈는지 설명한다.

3장에서는 유학의 한계도 직시한다. 농업 우위의 경제관과 상공업 경시, 국제무역의 부재가 생산성과 국력을 약화시켜 조선이 외세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4장은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한국의 ‘하이브리드’적 변모를 다룬다.

마지막 5장은 오늘의 한국을 ‘유교적 산업사회’라는 틀로 묶어낸다. 유학이 과거에만 머무는 죽은 사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성실성·공공성·연대 의식 속에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시도다. <사우·3만원>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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