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에…나락에 빠진 전남 가루쌀 재배농들
윤석열 정부 때 확대 정책 추진했다 소비 부진 이유 1년 만에 대폭 축소
전국 재배면적 1만6천ha→내년 8000ha ↓…가공업체 지원금도 사라져
농가 “정부 믿고 가루쌀로 대체했는데 수매량 절반 줄어든다니” 한숨만
전국 재배면적 1만6천ha→내년 8000ha ↓…가공업체 지원금도 사라져
농가 “정부 믿고 가루쌀로 대체했는데 수매량 절반 줄어든다니” 한숨만
![]() 16일 무안군 일로읍의 한 영농법인 창고에 농민이 수확한 가루쌀이 보관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쌀가루 지역자립형 생산모델 사업을 통해 지어진 베이커리에서 제빵사가 지역에서 생산된 가루쌀로 빵을 만들고 있는 모습. |
# 지난해 여름 첫 가루쌀을 모내기해 다음주 수확을 앞두고 있는 박혜진(여·41)씨는 내년부터 가루쌀 관련 지원 정책이 축소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불안감에 휩싸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윤석열 정부가 가루쌀을 전량 수매해준다는 말만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알아서’ 판로를 개척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박씨는 “홍보도 부족하고 정책이 들쭉날쭉하니 정부만 믿었던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최소한 몇 년은 유지된다는 믿음을 줘야 농민들도 계획을 세우는데, 당장 내년부터 누가 수매량이 줄어들지 걱정하게 되니 누가 정부를 믿고 새로 농사를 시작하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 건설업계 일을 하다가 3년 전부터 귀농을 하게 된 김보람(여·37)씨는 정부 말을 믿고 기존에 키우던 일반 쌀을 가루쌀로 대체했다가, 내년부터 판로가 막힐 처지에 놓였다. 가루쌀의 판로가 넓지 않은 만큼 정부에서 사 주지 않으면 딱히 수요가 없는 것이 현실인데, 윤석열 정부가 가루쌀 관련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버리니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김씨는 “식품 제조 업체에서 개별 농가 대상으로 바로 수매해가는 게 없다 보니까 정부 수매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에서 수매 면적을 줄이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생계가 막히는 것”이라며 “농민들이 걱정 없이 농사만 열심히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가루쌀 생산단지 조성 사업’에 참여해 수확 막바지 작업을 하던 전남 청년창업농민들이 ‘오락가락’ 전략작물 정책에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윤석열 정부 때 충분한 검토없이 가루쌀 생산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1년도 안돼 소비가 부진하다며 내년부터 재배면적을 대폭 축소키로 하는 등 ‘쌀가루 지역자립형 소비 모델’ 관련 지원책을 중단하기로 하면서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개선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농민들은 안그래도 가루쌀 활용도가 낮고 가공비용·인건비가 비싼데 정부 지원까지 줄면 버틸 수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내년도 농림부의 가루쌀 목표 재배면적이 8000ha로 설정됐다고 16일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애초 올해 설정한 가루쌀 목표 재배면적은 9500ha(생산량 4만5100t)이었다.
2023년께 처음 계획을 세울 때 2025년 목표 재배면적이 1만 5800ha(생산량 7만5000t)였던 것에 비하면, 목표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남 지역에서 올해 가루쌀 생산단지 조성 사업에 참가했던 57농가(4400㏊) 농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가루쌀에 대한 활용처가 마땅치 않다 보니 판로를 늘리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4년여 전 무안으로 귀농한 이동찬(44)씨는 “쌀이 남는다고 논에 쌀 대신 밭작물을 심으라고 하니 논콩도 심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다. 일반 쌀은 어디든 내다 팔 수 있지만 가루쌀은 쓰는 데만 쓰고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아서 판매처가 거의 없다”며 “이 사업 시작할 때는 ‘정부가 전량 수매해 줄 테니 재배만 해라’고 하길래 최소 10년은 내다 보고 시작했는데 정책이 뒤바뀌니 큰일이다. 가루쌀 업체들마저 수익 안 난다고 돌아서면 그 부담은 그대로 농민 몫이 될 판이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매입한 가루쌀이 판매된 것도 실제 매입량의 극히 일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문금주(고흥·보성·장흥·강진) 의원 자료를 보면 2024년산 가루쌀 매입량은 2만704t이었으나, 지난 8월말까지 실제 판매량은 2626t에 불과했다. 매입량의 12.6% 수준만 판매된 것이다.
비싼 가공비용과 인건비로 밀가루 대체재로서 내세울 장점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가루쌀의 가격은 1㎏당 1000원. 여기에 제분을 하기 위한 항온·항습 장치를 포함한 시설유지비 등 고정비, 가공비용·인건비까지 더하면 가공업체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또 지역에서 생산된 가루쌀을 지역 내에서 활용하겠다던 ‘쌀가루 지역자립형 생산모델’사업도 올해 말 종료돼 가루쌀 가공업체들 지원금도 사라지게 된다.
결국 농민들은 “재배 사업을 멈출거라면, 최소한 식품업체들이 쌀가루를 원료로 한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유통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실질적 지원책이라도 제공해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무안군 일로읍 한 영농법인 창고에서 올해 재배한 가루쌀을 건조시키던 이동욱(50)씨는 “농민들에겐 생산원가를 지원하고 단가를 밀가루보다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한다. 그럼 제과제빵 업체들에서도 누가 가루쌀을 안쓰겠느냐”며 “농민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재배하는 만큼 국가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나몰라라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남도는 내년도 생산단지조성사업에 56개소에 대한 신청을 받아 올려놓았으며, 재배면적도 올해와 비슷한 4500여 ha로 계획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에도 계획(기존 4500㏊)보다 100여㏊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면적이 조정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유덕규 전남도 식량원예과장은 “가공용을 중심으로 소비가 조금씩 늘고 있는 만큼,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밀가루 대용으로 쌀가루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더 많은 소비연계형 사업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 쌀가루 지역자립형 생산모델 사업을 통해 지어진 베이커리에서 제빵사가 지역에서 생산된 가루쌀로 빵을 만들고 있는 모습. |
윤석열 정부 때 충분한 검토없이 가루쌀 생산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다가 1년도 안돼 소비가 부진하다며 내년부터 재배면적을 대폭 축소키로 하는 등 ‘쌀가루 지역자립형 소비 모델’ 관련 지원책을 중단하기로 하면서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개선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농민들은 안그래도 가루쌀 활용도가 낮고 가공비용·인건비가 비싼데 정부 지원까지 줄면 버틸 수가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내년도 농림부의 가루쌀 목표 재배면적이 8000ha로 설정됐다고 16일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애초 올해 설정한 가루쌀 목표 재배면적은 9500ha(생산량 4만5100t)이었다.
2023년께 처음 계획을 세울 때 2025년 목표 재배면적이 1만 5800ha(생산량 7만5000t)였던 것에 비하면, 목표 면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남 지역에서 올해 가루쌀 생산단지 조성 사업에 참가했던 57농가(4400㏊) 농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가루쌀에 대한 활용처가 마땅치 않다 보니 판로를 늘리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4년여 전 무안으로 귀농한 이동찬(44)씨는 “쌀이 남는다고 논에 쌀 대신 밭작물을 심으라고 하니 논콩도 심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다. 일반 쌀은 어디든 내다 팔 수 있지만 가루쌀은 쓰는 데만 쓰고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아서 판매처가 거의 없다”며 “이 사업 시작할 때는 ‘정부가 전량 수매해 줄 테니 재배만 해라’고 하길래 최소 10년은 내다 보고 시작했는데 정책이 뒤바뀌니 큰일이다. 가루쌀 업체들마저 수익 안 난다고 돌아서면 그 부담은 그대로 농민 몫이 될 판이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매입한 가루쌀이 판매된 것도 실제 매입량의 극히 일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문금주(고흥·보성·장흥·강진) 의원 자료를 보면 2024년산 가루쌀 매입량은 2만704t이었으나, 지난 8월말까지 실제 판매량은 2626t에 불과했다. 매입량의 12.6% 수준만 판매된 것이다.
비싼 가공비용과 인건비로 밀가루 대체재로서 내세울 장점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가루쌀의 가격은 1㎏당 1000원. 여기에 제분을 하기 위한 항온·항습 장치를 포함한 시설유지비 등 고정비, 가공비용·인건비까지 더하면 가공업체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또 지역에서 생산된 가루쌀을 지역 내에서 활용하겠다던 ‘쌀가루 지역자립형 생산모델’사업도 올해 말 종료돼 가루쌀 가공업체들 지원금도 사라지게 된다.
결국 농민들은 “재배 사업을 멈출거라면, 최소한 식품업체들이 쌀가루를 원료로 한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유통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실질적 지원책이라도 제공해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무안군 일로읍 한 영농법인 창고에서 올해 재배한 가루쌀을 건조시키던 이동욱(50)씨는 “농민들에겐 생산원가를 지원하고 단가를 밀가루보다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한다. 그럼 제과제빵 업체들에서도 누가 가루쌀을 안쓰겠느냐”며 “농민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농산물을 재배하는 만큼 국가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나몰라라 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남도는 내년도 생산단지조성사업에 56개소에 대한 신청을 받아 올려놓았으며, 재배면적도 올해와 비슷한 4500여 ha로 계획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에도 계획(기존 4500㏊)보다 100여㏊ 줄어든 것을 고려하면 면적이 조정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유덕규 전남도 식량원예과장은 “가공용을 중심으로 소비가 조금씩 늘고 있는 만큼,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밀가루 대용으로 쌀가루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더 많은 소비연계형 사업시장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