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1- 김용택 시인
![]() |
내가 태어난 마을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앞과 뒤와 옆은 산으로 삥 둘러싸여 있고 그 좁은 계곡 사이로 어여쁜 강물이 흘러와서 흘러간다. 강물 속에는 크고 작은 바위와 돌들이 놓여 있고, 어른 키를 넘는 깊은 물과 아이들의 무릎도 넘지 않은 깊이의 물이 있다.
그 강물 속에는 물고기가 산다. 새우, 피라미, 임실 각시붕어, 쉬리, 은어, 붕어, 쏘가리, 메기, 뱀장어, 물 종개, 돌고기, 꺽지, 동사리, 피리, 자라, 잉어, 누치, 참마자, 모래무지, 조개, 다슬기, 징검이라고 하는 앞 발이 길고 몸이 큰 강물 새우, 물 새우, 모래밭에 사는 내장이 보이는 흰 모래색 새우, 참게 그리고 작은 물벌레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기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강물 속에서 살아간다.
강물로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나비가 날고 초승달과 상현달과 보름달이 강을 건너며 달빛이 부서져 흘러간다. 별빛이 강물에 찰랑거리고 해지면 물고기들은 물을 차고 힘차게 뛰어올라 벌레들을 차 간다.
그 강에 강물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징검다리는 마을의 중간에 놓여 있었다. 마을이 길어서 ‘긴 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한쪽 마을 끝 윤환이네 집과 다른 한쪽 끝 한수 형님네 집, 중간에 징검다리가 놓여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어 마을 인심의 큰 균형을 잡고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바로 앞산이고 산은 7부 능선까지 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70도가 넘는 경사진 밭이 대부분이다.
징검다리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축조물이었다. 달뜨면 징검다리에서 부서진 강물이 가장 반짝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강물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마을 사람들과 마을은 시정이 넘치는 풍경이었다. 징검다리는 봄이 되어 소들이 강을 건너고 여름이면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사람들이 발을 강물에 적시며 강물을 건넜다.
가을이면 강 건너 밭에서 거둔 곡식을 가져 날랐다. 붉은 감을 인 어머니들, 고추를 망태 가득 담아 짊어진 아이들,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은 징검다리 위로 섶다리를 놓았다. 징검다리가 잠긴 채 물이 얼기 때문이었고, 겨울에는 비가 오지 않아 섶다리가 온전하게 봄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나무를 해 짊어지고 섶다리를 건너다녔다. 봄이 되어 많은 비가 내리면 섶다리는 떠내려가버렸다. 사람들은 서운해 하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 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섶다리를 놓으면 되니까.
한겨울 강바람 몰아치고 강물이 얼면 어머니들은 얼음을 깨고 흘러가는 강물에 빨래를 했다. 강바람을 타고 마을로 실려 오는 어머니들의 빨래를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는 춥고, 또 춥고, 또 추웠다. 하얗게 언 강, 지금도 징검돌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빨래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내게 그림처럼 박혀 있다. 산을 때리던 빨래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와 함께 말이다. 다시 봄이 오면 아이들이 징검다리에서 고기를 낚았다. 고기를 낚은 낚싯대를 빙빙 돌리면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낚싯줄 끝의 물고기들, 그 아름다운 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내 가슴 어딘가를 찔러주던 그 빛. 나는 언제쯤 그 징검다리에 나갔을까.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앉은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 배속에서 나와 처음 어머니 등에 업혀 징검다리에 나갔을 때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침이었을까. 해 저물 때였을까. 내가 가을에 태어났으니, 아마 늦가을 어느 때였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빨래를 했는지, 배추를 씻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어머니 등 너머로 흘러오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듬해 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업고 징검돌 위에 앉아 빨래를 할 때 내 발이 강물에 닿았을 것이다. 아! 그때 나는 어땠을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내가 더 자라자, 어머니는 나를 자기 옆에 있는 넓적한 바위 위에 눕혀놓고 빨래를 했을 것이다.
내가 더 자라 앉을 줄 알게 될 때쯤 어머니는 나를 자기 옆 얕은 강물에 앉혀놓고 볼일을 보았을 것이다. 벌거벗은 어여쁜 내 몸을 강물이 감고 돌았겠지. 내 몸 주위로 작은 고기들이 다가와 내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고기들이 도망을 갔다가 또 돌아와 살을 콕콕 쪼았겠지. 내가 손을 휘저어 물을 치면 물방울들이 눈부시게 튀어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랐다.
그 강물 속에는 물고기가 산다. 새우, 피라미, 임실 각시붕어, 쉬리, 은어, 붕어, 쏘가리, 메기, 뱀장어, 물 종개, 돌고기, 꺽지, 동사리, 피리, 자라, 잉어, 누치, 참마자, 모래무지, 조개, 다슬기, 징검이라고 하는 앞 발이 길고 몸이 큰 강물 새우, 물 새우, 모래밭에 사는 내장이 보이는 흰 모래색 새우, 참게 그리고 작은 물벌레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기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강물 속에서 살아간다.
징검다리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축조물이었다. 달뜨면 징검다리에서 부서진 강물이 가장 반짝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강물을 건너가고 건너오는 마을 사람들과 마을은 시정이 넘치는 풍경이었다. 징검다리는 봄이 되어 소들이 강을 건너고 여름이면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사람들이 발을 강물에 적시며 강물을 건넜다.
가을이면 강 건너 밭에서 거둔 곡식을 가져 날랐다. 붉은 감을 인 어머니들, 고추를 망태 가득 담아 짊어진 아이들,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은 징검다리 위로 섶다리를 놓았다. 징검다리가 잠긴 채 물이 얼기 때문이었고, 겨울에는 비가 오지 않아 섶다리가 온전하게 봄을 맞이했다. 사람들이 나무를 해 짊어지고 섶다리를 건너다녔다. 봄이 되어 많은 비가 내리면 섶다리는 떠내려가버렸다. 사람들은 서운해 하지 않았다. 가을이 오면 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섶다리를 놓으면 되니까.
한겨울 강바람 몰아치고 강물이 얼면 어머니들은 얼음을 깨고 흘러가는 강물에 빨래를 했다. 강바람을 타고 마을로 실려 오는 어머니들의 빨래를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는 춥고, 또 춥고, 또 추웠다. 하얗게 언 강, 지금도 징검돌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빨래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내게 그림처럼 박혀 있다. 산을 때리던 빨래 두드리는 방망이 소리와 함께 말이다. 다시 봄이 오면 아이들이 징검다리에서 고기를 낚았다. 고기를 낚은 낚싯대를 빙빙 돌리면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낚싯줄 끝의 물고기들, 그 아름다운 빛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내 가슴 어딘가를 찔러주던 그 빛. 나는 언제쯤 그 징검다리에 나갔을까.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앉은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어머니 배속에서 나와 처음 어머니 등에 업혀 징검다리에 나갔을 때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아침이었을까. 해 저물 때였을까. 내가 가을에 태어났으니, 아마 늦가을 어느 때였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빨래를 했는지, 배추를 씻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어머니 등 너머로 흘러오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듬해 봄이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업고 징검돌 위에 앉아 빨래를 할 때 내 발이 강물에 닿았을 것이다. 아! 그때 나는 어땠을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내가 더 자라자, 어머니는 나를 자기 옆에 있는 넓적한 바위 위에 눕혀놓고 빨래를 했을 것이다.
내가 더 자라 앉을 줄 알게 될 때쯤 어머니는 나를 자기 옆 얕은 강물에 앉혀놓고 볼일을 보았을 것이다. 벌거벗은 어여쁜 내 몸을 강물이 감고 돌았겠지. 내 몸 주위로 작은 고기들이 다가와 내가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고기들이 도망을 갔다가 또 돌아와 살을 콕콕 쪼았겠지. 내가 손을 휘저어 물을 치면 물방울들이 눈부시게 튀어 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자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