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 - 이보람 예향부 부장
2025년 10월 22일(수) 00:20
세상은 점점 빨라진다. 이동하는 시간도, 식사 시간도, 대화의 여유도 줄었다. 성공조차 즉시 이뤄지길 바란다. 느리다는 건 곧 뒤처짐으로 여겨지고 기다림은 불안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결국 단번에 오르고 싶은 욕망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한탕주의는 게으름의 다른 말이 아니라 불안이 만든 속도의 습관이다. 복권, 코인, 주식, 부동산, 리워드, 큰돈의 환상에 이끌려 국경을 넘는 청년들까지. 이름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고 노력보다 속도가 중요해진 사회에서 한탕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일상의 방식이 된 모양새다. 단 한 번의 거래, 한 번의 기회, 한 번의 클릭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속도를 높였고 그만큼 인내의 자리는 좁아졌다. 기다림이 사라진 자리에 조급함이 자라고 조급함은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 되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의 온라인 사기와 강제노동 실태가 드러났다. 높은 급여라는 미끼에 낚인 청년들이 캄보디아라는 이름 앞에 ‘꿈의 일자리’라 믿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그곳은 일자리가 아니라 통제의 시작이었다. 높은 수익을 내세운 채용 제안과 단기간 고수익을 약속하는 투자 광고, 빠른 보상을 내세운 유혹이 달콤한 포장지를 두르고 등장한다. 한탕의 유혹은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로 합리화된다. 목적지는 여행지였지만 도착지는 덫이었다.

한탕주의는 경제의 현실인 동시에 인간의 본능이다. 불안정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빠른 보상을 원하고 결국 누군가는 그 심리를 정교하게 이용한다. 단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이제 확신처럼 굳어졌다. 불안이 깊어질수록 속도는 당연한 선택이 되고 그 선택은 결국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러나 열기가 식고 나면 남는 것은 현실이다. 뜨거웠던 열정이 빠져나가야 세상은 제자리를 찾는다.

한탕주의는 잠깐의 상승을 약속하지만 결국 그 후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한다. 세상은 여전히 속도를 부추긴다. 하지만 오래가는 것들은 언제나 느리다. 서두르지 않을 때 변화는 단단해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보람 예향부 부장 bo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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