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트서 13회째 한국 축제 여는 광주 출신 이정주 씨 “프랑스 ‘한국의 봄’ 축제, 고향 전라도서 열고 싶었죠”
남파고택·어반브룩서 제1회 ‘프랑스의 가을’
佛 미슐랭 요리사·고택 종부 미식 콜라보
거문고·더블베이스 ‘가을밤의 낭만’ 선사
프랑스 등 전세계서 거문고 연주자 활동
광주예고 졸업 후 전남 도립국악단 거쳐
퓨전 음악 관심…2002년부터 유럽버스킹
음원 증폭시키는 ‘전자 거문고’ 개발
2025년 10월 21일(화) 20:50
10일 나주 남파고택에서 열린 ‘제1회 프랑스의 가을’ 행사에서 전자 거문고와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이정주씨와 마리 시몽.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지난 10일 나주 남파고택(중요민속자료 제263호)은 한·불 문화교류의 장으로 변신했다. 고택 마당에서 열린 미식 콜라보 행사에서는 프랑스의 로망 보네 셰프(미슐랭 원스타), ‘흑백요리사’로 유명한 안유성 음식명장, 남파 고택 강종숙 종부가 협업한 음식들이 선보였다. 특히 남파고택의 200년된 씨간장에 졸인 장조림과 레드와인으로 만든 프렌치 라비올라와 나주배·다크초콜릿을 활용한 프렌치 정통 디저트를 내놓은 로망 보네의 요리는 눈길을 끌었다.

어둠이 내려 앉은 후 고택은 공연장이 됐다. 이정주의 거문고와 마리 시몽의 콘트라베이스가 어우러진 ‘끝없는 여정’ 공연은 동서양 악기가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며 가을밤의 낭만을 연출했다.

◇프랑스 낭트에서 한국 축제 창설

이날의 뜻깊은 행사는 ‘2025 제1회 프랑스의 가을 축제’ 일환으로 열렸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행사는 프랑스 낭트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봄 축제(Festival du Printemps Coreen)’의 ‘광주·전남판 행사’로 10~12일 어반 브룩 등에서 영화제, 동화 읽기,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지역에서 프랑스 문화를 만나는 독특한 프로젝트는 광주 출신으로, 낭트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거문고 연주자 이정주(57) 한국의 봄 축제 예술감독이 있어 가능했다. 지난 2009년 낭트에 정착한 그는 2013년 ‘한국의 봄 행사’를 창설했고 올해 13회 행사를 개최했다.

이정주씨가 창설한 낭트 ‘한국의 봄’ 축제 행사 포스터.
‘프랑스 가을축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박지현 문화토리 대표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신안에서 열린 임동창 피아니스트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고, 2024년과 2025년 지역 예술인과 기업인들이 낭트축제에 참여했다.

당시 김옥렬·김혜선 작가 등은 무등산과 소쇄원을 촬영한 작품을 전시했고 어반브룩은 한국의 돌잔치 문화를 선보였다. 또 남파고택은 김치·장조림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음악가 이승규와 자개 공예가 최진경도 함께 했다.

“2년 연속 방문이 이어지면서 광주에서 행사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제가 광주 사람인데 전라도와 결합해 미식과 음악, 전시 등 문화가 어우러진 축제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광주와 전남하면 미식을 주목하잖아요. 지역에서도 프랑스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고, 프랑스와 전라도 예술인들이 결합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니 의미있죠. 낭트 관광공사에서도 이번에 참여한 보네 셰프를 추천해 주는 등 적극 후원해 주었습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이수자인 그는 음원을 증폭시키는 ‘전자거문고’를 개발해 연주하는 파격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프랑스에 정착 후 일렉트로닉, 클래식,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번 고택 연주에서도 전자 거문고로 자작곡을 연주했다.

광주예술고등학교 1회 졸업생인 그는 집안 형편으로 대학 대신 1986년 전남도립국악단 최연소 창단멤버로 입단, 무대 활동을 시작했다.

“국악단에서 문화재 선생님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어린 제가 안쓰러웠는지 선생님들이 ‘아야 이리 온나 내가 장단 쳐주마’ 하시며 많이 가르쳐 주셨죠. 연주는 꼬박꼬박 테이프로 녹음해 집에서 다시 들으며 죽도록 연습했고 전주대사습에서 상을 받기도 했어요.”

광주대를 거쳐 조선대 음악교육과에서 공부한 그는 1995년 나고야에서 열린 한일음악페스티벌에 참여하며 변화를 겪는다. 한국 음악과 서양음악의 결합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퓨전 음악을 처음 접했어요. 한국 음악을 연주하는데 서양악기가 훅 들어오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죠. 얼마나 신이 나던지요. 정신없이 함께 연주했습니다. 아, 국악이 이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구나 깨달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정통 국악 연주는 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맛을 한번 보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정주씨가 창설한 낭트 ‘한국의 봄’ 축제 행사 포스터.
1997년 국악단에 사표를 내고 상경해 서울여성전통국극단에 들어갔다. 면접 당시 연주를 들어보던 관계자는 “오늘 저녁부터 바로 반주해달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조금앵, 홍성덕 등 국극스타를 만났고 드럼·베이스·신디와 국악기가 어우러진 ‘뺑파전’ 등을 공연했다.

공부를 계속하면 연주활동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늦은 나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 이생강, 서용석, 김영재, 정대석 등 각 분야의 명인들에게서 최고의 가르침을 받았고 연극원, 영상원 친구들과의 콜라보 작업도 즐거웠다. 이후 국악 유럽버스킹에 나섰다. 한복디자이너 박술녀가 협찬한 의상을 입고 판소리, 장구, 무용, 거문고로 팀을 짜 파리 퐁피두센터 광장에서 공연을 펼쳤다.

“해외에서 펼치는 국악 버스킹으로는 아마 처음이었을 겁니다. 거리 공연은 3분이면 족해요. 우리 음악이 먹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공연하며 확신을 얻었어요. 당시 국악을 들었던 외국인들이 우리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에 먼저 꽂힌다고 하더군요. 되겠다 싶었죠.”

◇전자 거문고로 전 세계에서 활동

그의 여정은 계속됐다. 팀 ‘구운몽’, ‘이정주 앙상블’ 등을 조직해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에서 공연했고 신나라 레코드에서 음반도 제작했다. 또 프랑스 그룹을 초대해 국립극장과 EBS ‘공감’에서 함께 공연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무대에도 섰다.

미식 콜라보 행사에 참여한 로망 보네 셰프(미슐랭 원스타), ‘흑백요리사’로 유명한 안유성 음식명장, 남파 고택 강종숙 종부.
프랑스 7번째 도시인 낭트는 교육도시이자 문화도시다. 프랑스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시장은 지속적으로 문화에 투자하고 세계적인 프로젝트도 빈번하게 개최된다. 그는 프랑스에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한국의 봄’ 축제를 열기로 마음 먹고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 온 음악친구들과 행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예산 문제 등을 언급하며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누르면 튀어오르는 성격이었던 그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이것저것 따지기 전 발이 먼저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앞만 보고 달렸다.

“가끔 낭트나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한국의 밤 행사같은 것을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늘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하고 지원받은 사람만 방문하거든요. 또 그냥 공연 몇 개 보여주기만 하고 가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한국의 문화가 얼마나 대단한데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죠. 꾸준히 행사를 이어오면서 K-P0OP과 K-드라마 덕에 한국의 변화된 위상을 몸으로 느껴요. 올해는 자원봉사자로 현지 젊은이들이 다수 참여했고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에서 찾아오는 축제가 됐죠. 낭트 시청도 적극 후원하고 있고요. 또 각 영화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파리한국문화원과 함께 낭트 한국영화제 5회째 열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봄’ 행사로 2015년 프랑스한국 문화상(Prix Culturel Franco-Coreen)을 수상하며 공로를 인정받았고 2023년에는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도 수상했다.

로망 모네 셰프가 한국 음식을 활용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이정주씨가 창설한 낭트 ‘한국의 봄’ 축제 행사 포스터.
국영프랑스라디오 RFI 제의로 12곡을 작곡해 디지털 음원으로 출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그는 1년에 43회 이상 공식적인 공연 경력이 있어야 자격이 부여되는 프랑스 정부의 ‘앵테르미텅 예술지원금’을 받고 있다.

또 정부의 다른 지원 프로그램인 ‘Generation SPEDIDAM’에도 선정돼 2025년부터 2027년까지 프랑스 주요 공연장에서 연주할 기회도 얻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함께 공연한 시몽 마리, 타악기 연주자 안-로르 부르제와는 ‘삼인동락(Samin Dong Rock)’ 프로젝트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수림문화재단의 지원사업에도 선정됐다.

한국의 봄 행사를 함께 꾸리고 있는 마리 시몽은 “거문고와의 협연은 다른 서양악기와의 작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색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연주하며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연주 활동을 하며 축제를 꾸리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프랑스에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한국의 예술인들이 찾아와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을 유럽에 알리고 싶어요. 첫 행사로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이번 ‘프랑스의 가을’ 행사와 잘 연결해 광주전남과 프랑스 예술인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타 지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전라도에서 행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번 ‘프랑스의 가을’ 행사에서는 내년 낭트 축제에 참여할 연주팀을 선정했으며 조찬천씨가 미식을 주제로 올해 낭트와 나주, 광주에서 촬영한 영상은 ‘한국의 봄’ 축제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낭트에서 열리는 한국의 봄, 전라도에서 열리는 프랑스의 가을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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