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네…선상 집하장은 ‘쓰레기 산’
고흥 해양환경정화선 타보니
밀려드는 쓰레기 수거 구슬땀
밧줄·가두리망·폐어구 등 수북
두시간도 안돼 쓰레기 7t 쌓여
고흥 연간 해양폐기물 5000t
15t짜리 정화선으로 감당 어려워
체계적인 통합 관리망 구축 필요
2025년 10월 21일(화) 19:30
고흥 해역에서 연간 5000t의 해양 쓰레기를 처리하는 고흥의 유일한 15t 해양정화선.
“바다에 밀려오는 쓰레기는 끝도 없는데 이 작은 배로 언제 다 퍼나르겠어요.”

지난 20일 오전 7시40분, 고흥군 녹동항에서 출항한 고흥군의 해양환경정화선 ‘청정고흥호’가 한 시간 남짓의 항해 끝에 14해리 떨어진 도하면 발포항 앞바다 선상 집하장에는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길이 6m, 너비 9m 크기의 선상 집하장에는 밧줄과 부표, 김 양식 가두리망, 나무 말뚝 등, 비닐포대, 빈 엔진오일 통 등 쓰레기 더미가 3m 넘는 높이로 쌓인 채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청정고흥호를 맞이했다. 12t 안팎으로 추정되는 이 쓰레기 산은 불과 20여일 사이 버려진 쓰레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청정고흥호 해양환경전문요원 4명은 갈고리, 칼, 로프절단용 가위 등을 주머니에 차고 좁은 선박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수거 작업에 열중했다.

10ℓ짜리 폐유통, 3m가 훌쩍 넘는 철 막대기, 폭 2여m의 검은 비닐봉지 등이 선박 끝에 설치한 커다란 망으로 쉴 새 없이 들어갔다. 갑판 위 설치된 0.5t용량 크레인이 집게로 그물과 로프를 들어 올릴 때마다 바닷바람에 스티로폼 조각 등 쓰레기가 흩날렸다.

작업 시작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1t들이 그물망 3개에 쓰레기가 가득 차 갑판을 차곡차곡 채워 나가더니, 두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7t가량의 쓰레기로 갑판이 가득 찼다. 여전히 집하장에는 5t이 넘는 쓰레기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배는 하역작업을 위해 항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고흥청정호에서 크레인을 조종하는 갑판장 오연모(56)씨는 “쓰레기 종류만 해도 현수막부터 어업용 냉장고에 욕조, 배관, 생활쓰레기까지 다 섞여 있다. 고흥뿐 아니라 먼 바다에서 밀려온 것도 상당하다”며 “집하장이 다 비워지면 속 시원하겠지만, 쓰레기를 남겨 두고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이들이 오전 7시부터 준비하고 하역작업까지 하면 오후 3~4시정도가 되는데, 이동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영남면 남렬리의 경우 편도 최대 2시간 거리라 집하장에 한 번만 가서 가져와도 하루가 훌쩍 흐른다.

해양환경전문요원 정근태(48)씨는 “밀려온 쓰레기가 섬 해안가에 걸려있는 게 작업할 때마다 보인다. 가까운 건 최대한 치우고 가려고 하지만 시간도 없고 우리 배에 다 못 실어 남겨두고 갈 때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고흥군 발포 앞바다에 설치된 해양쓰레기 선상집하장에서 해양환경정화선 ‘청정고흥호’가 크레인으로 해양폐기물을 집어 올리고 있다.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전남 앞바다가 해양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날 전남도에 따르면 2020~2024년 전국 해양쓰레기 수거량은 65만t, 이 중 전남이 19만7000t(30.3%)으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고흥군의 경우 해마다 5000t의 해양쓰레기가 수거되고 있으며, 고흥청정호는 이 중 연간 1000t밖에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배 하나로 60개가 넘는 선상 집하장을 돌아다니면서 작업 중인데, 본격적인 김 작업을 앞둔 어민들이 “쓰레기 좀 빨리 빼달라”고 민원을 넣어도 시간과 장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청정고흥호는 전남도 내 5척의 정화선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로 여수 정화선(115t, 151t)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고흥군만의 일이 아니다. 전남도가 관리·운영하는 정화선의 수거량은 2022년 1490t에서 2024년 3202t으로 늘었지만, 쓰레기 양은 그보다 더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만 전남도에서 4만5027t의 해양쓰레기가 발생했으며, 이 중 외국 등 타 지역에서 밀려온 것만 87%(3만2000t)에 달한다.

또 전남도 내 정화선 5척 중 청정고흥호와 지난달 새로 건조한 완도정화선(청정12호)선을 제외한 정화선 3척은 건조된 지 20년을 훌쩍 넘긴 노후 선박인 것으로 나타났다. 선상집하장도 노후돼 전남도 내 14개 시·군에 설치된 선상 집하장 573곳 중 29곳은 현재 사용이 중단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끝없이 유입되는 해양쓰레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수거선을 확대·교체하는 등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해양쓰레기로 전남 앞바다가 환경오염에 고스란히 노출될뿐 아니라, 어민들도 수산자원 피해, 어업 생산성 저감, 선박사고 등 위험을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어민들의 피해가 이미 현실화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남 지역해역에서 발생한 부유물 감김 선박 사고(지난 2022년 기준)는 115건으로, 전국(339건)의 33.9%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다.

시·군별로 해양 쓰레기 관리 체계에 차이가 큰데다 통합 조례조차 없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데이터 축적, 시스템 고도화가 어려운 점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박은옥 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장기적인 해양쓰레기 대책을 세우려면 수거·운반·처리 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통합 관리망’을 만들고, 드론과 위성,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디지털로 기록·관리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며 “수거된 폐어구와 패각, 괭생이모자반 등은 퇴비·건자재·바이오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순환 산업으로 연결하는 등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흥=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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