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담 착취’서 벗어난 곰아, ‘요양병원’서 편히 쉬렴
구례에 전국 처음으로 문 연 사육곰 보호시설 가보니
시력 잃고 다리 없고 이빨 빠지고…‘만신창이’ 10마리 입소
마산면에 2만5744㎡ 규모…수의사 상주 건강상태 등 점검
2025년 10월 12일(일) 20:25
경기도 연천의 한 농가에서 이송된 사육곰이 우리 안에서 쉬고 있다.
40여년간 웅담(곰의 쓸개) 채취를 위해 3.3㎡(1평) 남짓의 뜬장(바닥이 땅으로부터 떠 있는 철조망)에서 살아온 반달가슴곰들이 여생이라도 행복하게 지내게 해 줄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전국 첫 공영 사육곰 생추어리(동물보호시설)로 지리산 자락에 개관한 ‘구례 곰 마루쉼터’는 이런 고민에서 나온 시설이었다. 곰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고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한 곳으로, 경기도 연천의 한 농가에서 길러지던 사육곰 10마리와 함께 문을 열었다. 환경부와 구례군이 조성해 국립공원공단이 위탁운영을 맡았다. 국가가 운영하는 생추어리는 이 곳이 처음이다. 민간에서는 지난 2019년 경기도의 한 종돈장과 실험실에서 구조된 돼지가 사는 ‘새벽이 생추어리’와 폐업한 농장에서 구조된 사육곰이 지내는 ‘화천 곰 보금자리’, 2021년 구조된 홀스타인종 소가 머무는 ‘달뜨는 보금자리’ 등 민영 동물 보호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 10일 시설에서 만난 곰들은 ‘착취’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10마리 곰들 중 한 마리는 다리 3개가 절단돼 뒷다리 하나로 몸을 지탱했고, 다른 한 마리는 치아가 뭉텅이로 빠져 있었다. 시력을 잃고, 피부병을 앓고 있는 등 대부분의 곰들이 오랜 사육 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이들은 낯선 이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벽에 등을 붙인 채 경계하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입소한 지 2주가 된 곰들은 여전히 사람과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채 적응기를 보내고 있었다.

시설은 이들 곰에게 ‘요양병원’ 같은 곳이었다. 지리산 자락 2만5744㎡ 부지에 연면적 1506㎡ 규모로 조성됐으며 3개 동(30실)에 최대 49마리를 수용할 수 있다. 마리 당 15㎡의 방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거나 맨바닥을 밟고 거닐 수 있다.

지난달 30일 구례군에 국내 첫 공영 사육곰 보호시설.
단독 생활하는 곰의 특성에 맞춰 두 실 당 하나의 중간 방사장을 마련하고, 나무를 타고 언덕을 오를 수 있는 운동장에는 2중 전기울타리와 날카로운 발톱에도 잘 뚫리지 않는 폴리카보네이트 차단벽을 설치했다. 시설에는 수의사 3명과 사육사 6명 이상이 상주하며 곰의 행동과 건강상태를 살피고 있다.

시설에 입소한 곰들은 정확한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곰은 치아 상태나 몸무게 등으로 나이를 가늠하는데, 이곳의 곰들은 오랜 사육 환경 탓에 치아가 대부분 손상돼 있고, 몸무게도 정상 범위보다 적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2014~2017년 곰의 증식을 막기 위해 전국 사육곰 농가를 대상으로 불임수술을 시행했다는 점을 감안해 어렴풋이 10세 이상이라는 점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곰 사육 산업은 지난 1981년 정부가 웅담 산업을 장려하면서 시작됐다. 한때 전국 160여 농가에서 1400마리 이상이 사육됐지만, 산업이 사양화되며 불법 증식과 도살, 밀매가 이어졌다.

지난 2022년 1월 환경부, 한국사육곰협회, 시민단체, 지자체(구례군·서천군)이 ‘곰 사육 종식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는 등 곰 사육 산업 종식을 위한 논의가 지속돼 왔다.

2023년 12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따라 2026년 1월 1일부터는 사육곰 사육과 웅담 생산·섭취가 전면 금지된다. 사육곰 농가들은 올해 말까지 자율적으로 개체를 처분하거나 보호시설에 이송해야 하며, 이후에는 사육 자체가 불법이 된다.

이에 따라 동물자유연대, 녹색연합,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어웨어 등 4개 시민단체는 후원금을 모아 사육곰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구조된 곰들은 구례로 이송되거나, 추후 개관 예정인 충남 서천(70마리)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신창근 국립공원관리공단 계장은 “처음 시설에 이송됐을 때 농가에서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해 대부분 영양실조에 가까운 상태였다”며 “사육곰이 남은 여생을 안전하고 존중받는 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사육곰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활동가들은 아직 구조하지 못한 사육곰이 전국에 퍼져 있다고 말한다.

현재 전국에 남아 있는 사육곰은 240여 마리로 추산된다. 이 중 10여 마리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가 운영하는 민간 보호시설에서 돌보고 있으며, 시민단체는 계속해서 사육곰 구조를 위해 농가와 접촉할 계획이다.

강재원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보호시설 개소가 사육곰 산업을 종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현재 정부 예산에 사육곰 매입비가 포함돼 있지 않아 농가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은 지어졌는데 머물 곰들이 없으면 그 또한 문제”라며 “사육곰 산업이 사양화되고 곰들의 고령화가 진행되는 만큼, 향후 보호시설의 활용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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