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든, 영화든, 한가위만 같아라
예측 불가능 ‘크라임씬 제로’
레전드들의 귀환 ‘최강야구’
모성과 범죄 사이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모험과 감동과 성장이 함께 ‘엘리오’
묵직한 질문과 파고드는 여운
‘얼굴’을 만난 건 ‘어쩔 수가 없다’
2025년 10월 03일(금) 10:00
‘최강야구’
OTT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성한 연휴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송편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연휴만큼이나 기다려지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안방극장’이다. 극장가로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이들에게 OTT는 더없이 든든한 대안이다. 범죄 추리 예능부터 레전드 야구인의 귀환, 강렬한 범죄 스릴러와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까지. 올 추석 연휴,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 네 편을 소개한다.

#추리 예능의 귀환 ‘크라임씬 제로’

‘크라임씬 제로’는 2025년 하반기 가장 큰 화제작 가운데 하나다. JTBC 예능으로 시작해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크라임씬’ 시리즈가 넷플릭스에서 스케일을 키워 돌아왔다.

출연자들은 탐정, 유가족, 마을 주민 등 각기 다른 캐릭터를 부여받아 현장을 누비며 단서를 수색하고 범인을 추리하게 된다. 에피소드마다 다른 사건이 펼쳐지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돼 흥미를 끌어낸다. 사건 현장은 드라마 세트처럼 사실적으로 구현된다.

이번 시즌에는 장진, 박지윤, 장동민, 김지훈, 안유진 등 예능과 연기를 넘나드는 출연진이 사건 현장을 누빈다. 매회 게스트가 합류하는 구조도 되살아나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더한다.

첫번째 에피소드 ‘폐병원 살인사건’은 버려진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거대한 폐건물과 뒷산까지 한 마을을 통째로 구현한 세트는 역대 시즌 중 가장 큰 규모로 꾸며져 시각적 몰입도를 높인다. 복선과 반전이 교차하며 실제 서스펜스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긴장이 이어진다.

출연자들이 서로 “나는 범인이 아니다”며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은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낸다. 시청자가 단서를 따라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명절 동안 가족끼리 나눌 수 있는 좋은 이야기거리가 될지 모른다. (넷플릭스)

#레전드들의 두 번째 그라운드 ‘최강야구’

이종범, 윤석민, 나지완….

유니폼을 벗었던 ‘레전드’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최강야구’는 은퇴한 프로 선수들이 한 팀을 꾸려 다시 야구에 도전하는 스포츠 예능이다. 올가을 새롭게 돌아온 시즌4는 이종범 감독이 새로 지휘봉을 잡으며 전면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김성근 감독 체제였던 지난 시즌과 달리 선수단이 대폭 교체됐고, 팀 이름도 ‘최강 몬스터즈’에서 ‘브레이커스’로 바뀌었다. 한계를 깨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라인업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KIA 타이거즈 출신 윤석민, 나지완, 이대형을 비롯해 권혁, 윤희상, 이현승, 오주원 등 마운드를 지켰던 투수들이 합류했다. 2025 시즌의 목표는 아마추어 최강 팀들과의 토너먼트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것이다. 오랜만에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선 이들의 모습은 팬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오고 동시에 ‘두 번째 도전’을 지켜보는 묘한 긴장감을 안긴다.

물론 잡음도 있었다. JTBC와 전 제작진의 갈등으로 김성근 감독을 비롯해 박용택, 정근우, 유희관, 이대호 등 이미 팬덤을 확보한 선수들이 이탈해 유튜브 예능 ‘불꽃야구’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 이종범 감독이 지난 6월 프로야구 시즌 도중 KT 위즈 코치직을 내려놓고 합류한 사실까지 겹치면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티빙·웨이브·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

#서늘한 모자(母子)의 대면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SBS 금토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은 프랑스 드라마 ‘라 망트(La Mante)’를 원작으로 한국적 정서와 인물 구도를 덧입은 변영주 감독의 연출작이다.

주인공 정이신(고현정)은 20여 년 전 가정폭력범들을 연쇄살인한 ‘사마귀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인물이다. 시간이 흘러 과거의 범죄를 그대로 모방한 살인이 벌어지자 경찰은 다시 그녀를 찾아간다. 수사팀은 정이신의 경험과 지식을 빌리려 하고 이 과정에서 그녀의 아들이자 형사 차수열(장동윤)이 사건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범인을 잡아야 하지만 증오하는 어머니와 공조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드라마는 범죄 수사극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중심에는 가족이라는 모순된 관계가 놓여 있다. 초반부는 잔혹한 살인의 재현으로 서늘한 공기를 자아내고 중반부 이후에는 모자 관계의 갈등과 심리전으로 무게 중심을 옮긴다.

고현정의 연기는 단연 눈에 띈다. 차갑고 광기에 가까운 표정과 태도는 인물이 지닌 이중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장동윤 역시 억눌린 감정과 분노 사이를 오가며 아들의 내면을 담백하게 표현한다. (웨이브·넷플릭스)

‘엘리오’
#우주로 간 소년 ‘엘리오’

픽사의 신작 ‘엘리오’는 평범한 소년이 우주로 소환되며 겪게 되는 모험과 성장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외계 연합체 ‘커뮤니버스’는 지구 대표를 불러들이려다 우연히 엘리오를 선택한다. 특별한 능력 없는 평범한 소년은 졸지에 지구의 대표가 되어 낯선 행성과 기묘한 생명체들 앞에 서게 된다.

영화는 외계 세계에 던져진 엘리오가 서툴게 적응하며 겪는 실수와 해프닝을 유머로 담아낸다. 외계의 언어나 규칙을 알지 못해 곤란에 빠지지만 솔직하고 순수한 태도가 오히려 벽을 허문다. 낯선 환경 속에서 조금씩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이 관객의 미소를 이끈다.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을, 어른들에게는 잊었던 용기를 일깨우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세대가 함께 보기 좋은 작품이다. (디즈니플러스·쿠팡플레이)

‘어쩔 수가 없다’
영화

최근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극장가지만 명절만큼은 여전히 가족들에게 특별한 나들이 장소가 된다. 이번 추석 관객들을 기다리는 건 거대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질문과 여운을 품은 한국 영화들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생동감을 잃지 않은 두 편의 작품이 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보이지 않는 진실을 좇다 ‘얼굴’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최고다.” 제작비 2억 원에 불과한 저예산 독립영화가 관객들의 호평을 끌어내고 있다. ‘부산행’, ‘반도’로 주목받은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이다.

동명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실종된 어머니의 진실을 좇는 과정을 담은 미스터리 드라마다.

주인공은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임영규(권해효·박정민)와 그의 아들 임동환(박정민). 어느 날 40년 전 행방불명됐던 아내이자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유골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들은 다큐멘터리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끔찍할 정도로 못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그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은 편견과 왜곡의 매개가 되며 사건의 진실을 더욱 미궁 속으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얼굴’이라는 소재를 단순한 가족사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증언으로 확장시킨다. 불편한 메시지를 담담하게 던지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만은 않다. 관객은 비교적 쉽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벼랑 끝 가장의 선택 ‘어쩔 수가 없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에 초청되며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를 원작으로 한 블랙코미디다.

주인공 유만수(이병헌)는 제지회사에서 25년간 일해 온 전문가로 아내 이미리(손예진)와 두 자녀, 반려견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살아왔다. “다 이뤘다”며 행복해하던 순간, 회사는 “어쩔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해고를 통보한다.

만수는 세 달 안에 재취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면접마다 낙방하고 대출 연체로 집까지 위기에 처하자 점점 벼랑 끝으로 몰린다. 마지막 희망으로 던진 이력서마저 거절당하자 그는 결국 극단적인 결심에 이른다. 경쟁자를 없애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은 곧 파국으로 이어진다.

박찬욱 감독은 이야기를 단순한 범죄극으로 풀지 않는다. 어둡고 건조한 톤, 차가운 색감, 긴 침묵은 인물의 체념과 분노를 극대화하며 웃음과 불편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이병헌은 절망에 몰린 가장의 내면을 집요하게 끌어내고 손예진·박희순·이성민 등 조연진은 현실적 무게를 더하며 서사의 밀도를 높인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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