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이니셔티브’의 의미와 과제 - 서보혁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년 09월 30일(화) 00:20
이재명 대통령이 9월 23일(현지 시각) 뉴욕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새로운 대북정책을 발표하였다.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묶어 전개한다는 소위 ‘END 이니셔티브’가 그것이다.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북한체제 존중, 흡수통일 반대, 적대행위 중단 등 대북 3원칙을 재확인하고, 그 위에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의 길을 일관되게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기조연설 직후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 대통령의 발언에 공감을 표시했지만 국내에서는 보수 야당 중심으로 “퍼주기”, “가짜 평화”라는 공격을 받았다. 다만 국내 언론은 비교적 차분한 논조를 취하며 새 대북정책의 의의와 한계를 균형적으로 짚었다.

이 대통령의 유엔 기조연설이 갖는 제일의 의미는 평화 우선의 대북정책을 국제사회에 천명했다는 점이다. 전임 윤석열 정부는 위헌적인 비상계엄에 안보를 이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2024년 5월부터 계엄까지 한반도는 대북 삐라 풍선과 대남 오물 풍선, 그리고 남측 무인기의 평양 진입, 상호 군사훈련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 대통령은 위 연설에서 “평화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기본적 토대”라고 강조하는 등 평화를 25회나 언급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대통령 연설의 평화 우선은 통일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반도의 궁극적인 평화는 통일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이번 대북 제안이 END가 아니라 통일(Unification)을 넣어 ENDU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단기적으로 힘들고 현재 남북대화가 중단된 상태를 직시한다면 이 대통령의 평화 우선 혹은 선 평화, 후 통일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의미는 새로운 비핵화 방안이다. 새롭지 않다고 생각하면 기존 비핵평화론의 수정 제안으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 ‘중단’부터 시작하여 ‘축소’의 과정을 거쳐 ‘폐기’에 도달하는 실용적, 단계적 해법”을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북한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면서도 1단계 목표를 기존의 동결에서 중단으로 하향조정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일단 북한의 중단 없는 핵능력 고도화 움직임을 저지하고 핵협상 국면을 조성하는 것이 당면 과제임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중단은 사찰과 같은 국제적 관여 없이 북한측의 선의에 의존한다는 한계가 있어 핵개발 중단을 어떻게 이끌어낼 지가 관건이다. 비핵화 구상의 일단이 바로 END 이니셔티브인데 대북 교류, 정상화와 비핵화를 순서 없이 상호동시적으로 전개한다는 발상이다. 여기서 정상화는 물론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포함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21일 있었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북대화를 부정하면서도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서지 못할 리유가 없습니다”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이 북미대화를 지지하고 그 이후 남북대화를 모색하는 길밖에 없다. 물론 한국으로서는 북미대화 가능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중국,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쟁 위험을 없애고 평화 공존 하에 공영할 한반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을 소극적 평화를 달성하고 그 위에서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2단계 연속 평화론’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첫 단추인 북한과의 대화의 접점을 당장 찾는 일은 북한의 깊은 불신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 취임 직후 대북 전단 살포와 비방 방송을 중단시킨 것에 북한이 호응해온 전례를 살려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또 국제협력에도 힘써야 한다. 마침 김정은 정권이 다자협력에 관심을 보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7년 만에 유엔 총회에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다고 한다. 북한이 관심을 보이고 한반도 평화에 이바지할 다양한 국제협력 어젠다들이 유엔 안팎에 즐비하다. 일관된 평화 공존·공영의 메시지를 발신하며 대화의 접점을 마련하는 인내심 있는 접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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