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 유제관 제작총괄국장
2025년 09월 30일(화) 00:20
오래 전의 기억이다. 여름철이면 소에게 풀을 먹이러 뒷산에 자주 다녔다. 하루는 소를 풀어놓고 친구들과 해지는 줄 모르고 놀다가 그만 소를 잃어버렸다. 어두워질 때까지 산 속을 헤맸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집에 와보니 소가 먼저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마구간에 누워 무심한 표정으로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소를 보니 안도감·미안함·야속함 등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때 부모님의 지청구는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뭐하고 놀다 소보다 늦게 들어 오냐?”

동물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 귀소(歸巢)는 둥지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귀소성은 먼 곳에 갔다가도 살던 집으로 돌아오는 성질을 말한다.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철새가 계절에 따라 서식지로 돌아오는 것처럼 인간 역시 명절이라는 특별한 날이 되면 본능적으로 고향을 찾아가게 된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흐르는 귀소본능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되는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 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이 아닌 도시의 아스팔트 문명에서 자란 세대에게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있다. 고층아파트 숲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마음 한곳엔 흙냄새 나는 놀이터와 푸른 공원, 그리고 별빛이 스며있던 추억의 장소가 남아있을 것이다. 그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일 수 있고, 혹은 기억 속에만 살아남은 마음의 풍경일수도 있다.

해마다 추석이 되면 전국의 도로에는 수천만 명의 고향 찾기 행렬이 이어진다. 이른바 ‘민족의 대이동’이다. 이번 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마을 어귀를 지키는 정자나무, 벼가 익어가는 황금빛 들녘, 시골집 마당의 웃음소리 등 고향의 정취와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해도 명절은 역시 명절이다. 이번 추석도 고향의 정을 듬뿍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유제관 제작총괄국장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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