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섬진강변 ‘책의 숲’, 섬진강 책사랑방
2025년 09월 28일(일) 16:45
섬진강 책사랑방 & 북카페 선 내부. 나무 책장과 테이블, 의자들이 어우러져 카페이자 도서관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최현배 기자
책에 파묻혀 사는 삶은 어떤 기분일까. 섬진강이 바라다 보이는 멋진 공간에서 ‘섬진강 책사랑방 & 북카페 선’을 지키는 책방지기 김종훈씨와 박선희씨 부부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구례 읍내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끝이 보이지 않는 책의 숲을 만난다. 이름부터 정겹다. ‘섬진강 책사랑방 & 북카페 선’.

산수유 차를 만들고 있는 북카페 박선희 대표. /최현배 기자
책방은 김종훈 대표가, 북카페는 그의 아내 박선희씨가 맡아 운영한다. 1층부터 3층까지 빽빽하게 들어찬 책장이 압도적이지만 곳곳에 마련된 테이블 덕에 건물 전체가 카페이자 쉼터로 이용된다.

김종훈 책방지기는 1978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대우서점’을 열고 시작해 지금까지 47년째 책방을 지키고 있다. 부산에서만 42년을 보냈고 구례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5년이 흘렀다.

천장까지 가득 채운 수십만 권의 책들이 벽면을 따라 빼곡히 꽂혀 있다. 책방지기 김종훈 씨의 소중한 보물들이다. /최현배 기자
“헌책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사람이 안 보면 다 새 책이고, 읽었으면 헌 책이지요. 책은 내용이 살아 있으면 언제나 새 책입니다.” 책방지기의 말처럼 이곳의 책들은 나이와 출처를 불문하고 모두 ‘살아 있는 정신’이다.

서가에는 20만 권이 넘는 책이 꽂혀 있다. 고전부터 한국학, 향토사, 고고학 발굴 보고서, 심리학과 의학서, 종교·명상서, 미술·디자인 서적, 화보집까지 다양하다. 인터넷 헌책방에서 찾기 어려운 바코드 없는 책, 절판본, 오래된 전집까지 망라돼 있다.

부산 시절 대학생·연구자들이 주요 고객이었다면, 구례에서는 호기심에 찾아온 여행자, 은퇴자, 책 애호가들이 뒤섞인다. 어느 날은 광주, 또 어느 날은 부산까지 발품을 팔아 책을 들여오는 끝없는 애정으로 이 방대한 컬렉션이 유지된다.

책을 사고파는 것만이 공간의 전부는 아니다. 책방 옆에는 무인 판매대도 있다. 잡지, 아동서, 전집 낱권 등을 권당 2000 원에 가져갈 수 있는데, 현금을 넣거나 송금으로 계산을 마치고 수 권씩 챙겨간다. 신뢰와 자율이 운영의 원리다.

섬진강책사랑방 전경. /최현배 기자
북카페 ‘선’은 책방의 쉼터 공간이다. 박선희씨의 이름 한 자를 골라지었다. 특별한 시그니처 메뉴 대신 책과 어울리는 음료를 내놓는다.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아메리카노와 더불어 구례 특산 산수유차, 유자·오미자·매실·생강차, 지리산 수제 발효차와 운남보이차까지 갖췄다. 책장을 넘기며 차 한 잔 기울이는 손님들의 풍경이 책방의 분위기를 피워낸다.

“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많이 팔리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책이 있다는 믿음이 있지요.” 실제로 책방에서는 북토크와 독서회가 꾸준히 열려 독자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한다. 부산 시절부터 이어온 전통인데, 회원 중에는 책을 내거나 강연자로 성장한 이들도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책을 잘 안 본다고 하지만 읽는 사람은 꾸준히 읽습니다. 중요한 건 책이 주는 집중의 시간이에요. 300쪽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인내력, 그 안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김 대표는 “책을 읽고 치유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대체할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책 숲에서 회복하기를 바란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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