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서 통역 봉사할 때 외교관 된 것 같아요”
광주 세계장애인양궁 80세 최고령 통역봉사 손동룡씨
일본어·영어 능통…교사 정년 후 다문화 한국어 교육봉사 등
‘국무총리 모범봉사상’ 수상…“다음 목표는 문화관광해설사”
2025년 09월 25일(목) 19:10
“양궁 경기장 통역 봉사자 중 제가 ‘맏형’입니다. 하루에 만 보 넘게 걸어도 즐거워요.”

세계 각국 선수와 관계자들이 모인 광주 2025 세계장애인양궁선수권대회서 눈길을 끄는 이가 있다. 최고령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자 손동룡(80)씨다.

“스미마셍, 나니오 다스케마스카? (실례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대회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그의 따뜻한 인사말은 선수와 스태프들에게 낯선 공간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장애인 대회에 앞서 열린 현대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도 자원봉사자로 활약한 그는 교사 시절 영국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으로 일어뿐만 아니라 영어에도 능통하다.

지난 24일 그의 활약이 빛난 순간이 있었다. 딸이자 손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슬로바키아 모녀가 관람석을 찾지 못해 입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들에게게 다가가 영어로 대화하며 경기장으로 안내한 이가 바로 그였다. 무사히 경기를 관람한 두 사람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연신 고마움을 전하며 손 씨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함평 학다리고등학교에서 화학 교사로 정년한 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교사 시절 받았던 일본어 연수를 바탕으로 통역 봉사에 나섰다. 2007년 다문화가정 한국어 교육을 시작으로 봉사의 길에 들어섰고, 지금은 임동행정복지센터에서 일본인 강사와 함께 지역 주민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와 2019 세계수영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국제대회에도 빠짐없이 참여했고 국무총리에게 ‘모범봉사상’을 받기도 했다.

“언어를 매개로 한 봉사활동을 통해 도움을 드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온 덕분에 지금까지 현장에 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국제대회에서 봉사하다 보면 마치 외교관이 된 것 같아요. 저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봉사자가 곧 나라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대회 기간 중 손 씨의 하루는 오전 8시 30분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이어진다. 통역뿐 아니라 외국 선수들의 길잡이가 되고, 음료를 챙겨주거나 셔틀버스를 안내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봉사를 할 때면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막 뛰어다녀요. 그러니 사람들이 좀 놀라죠. ‘할아버지가 뛰어다닌다’고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가족들도 좋아해 주고, 무엇보다 세계인과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게 제일 큰 기쁨입니다. 통역 봉사는 제게 제2의 직업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봉사하며 매순간 뿌듯함을 느낀다는 그의 봉사 철학은 단순하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며 지역을 알리는 일이다.

봉사를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매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오는 28일 대회가 끝나는 날까지 경기장을 지킬 계획이다.

/글·사진=박연수 기자 training@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www.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wangju.co.kr/article.php?aid=1758795000789874028
프린트 시간 : 2025년 09월 27일 01: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