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시·자연의 조화…수묵화 새로운 전통 그려 가야죠”
‘허백련미술상’ 본상 이철량 작가
광주시립미술관서 ‘시정유묵’전
2025년 09월 25일(목) 18:35
오는 11월 9일까지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2024 허백련미술상 수상작가전 ‘시정유묵’전에 참여한 이철량 작가가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의재미술상을 주신 것에 대해 고맙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국화를 공부하던 시절 의재 허백련 선생님을 롤 모델로 삼으면서 그렸어요. 대가의 이름을 딴 상을 주신 데 대해 광주시민들과 시립미술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4 허백련미술상’ 본상 수상자인 이철량 작가는 지금까지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창작세계를 펼쳐왔다.

이 화백의 예술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소개하기 위한 ‘시정유묵’(市精幽墨)전(오는 11월 9일까지) 개막식이 25일 시립미술관(관장 윤익)에서 열렸다. 이번 수상작가전은 외견상 이 작가의 작품을 조명하는 한편 허백련미술상이 지향하는 정신과 가치도 함께 톺아보자는 취지도 담고 있다.

전북 순창 출신인 이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1985년부터 2017년까지 전북대 교수로 32년간 재직하며 많은 후학들을 양성했다.

전시실에서 만난 이 작가는 평생 예술의 길을 걸어온 이들에게서 배어나오는 깊이와 분위기가 느껴졌다. 작품과 작가는 닮는다고 하는 말이 예에서도 통용되나 싶었다. 전체적으로 수묵화와 이 화백의 인상이 유사했다. 부드러운 듯 강직해 보이는 면들은 먹이라는 한국화의 속성으로 수렴되었다.

그는 “주제인 ‘시정유묵’(市精幽墨)은 도시와 자연 등 삶의 풍경을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며 “자연에만 국한되던 전통 수묵의 관점을 도시적 감성으로 확장해 우리 삶의 공간을 포괄적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도시의 조화로운 삶과 미학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수묵은 보이는 세계, 보이지 않는 의식의 세계 등을 구현하고 전달하는 조형 언어”라고 덧붙였다.

‘신시’
유묵(幽墨)은 ‘말없이 잠자코 있다’라는 의미다. 겉으로 드러나는 풍경 외에도 공간과 사물, 생명체의 내면을 응시한다는 뜻이다. 수묵에 깃든 본질적인 정신, 한국화 이면에 드리워진 정체성과도 연계된다.

허백련미술상 수상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회화 53점이 선보인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던 수묵의 확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관객을 맞는다.

“80년대 청년 작가 시절의 수묵화는 고유한 전통 회화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전통을 어떻게 새로운 그림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었죠. 정신적으로나 전통적으로나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그러한 연장선에서 새로운 수묵화 운동을 펼치기도 했었죠. 말 그대로 전통을 고수하거나 답습하는 차원이 아닌 기존과는 다른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 동시대와 함께 호흡하고 함께 발맞춰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생각을 했어요.”

전시는 모두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지금-여기’에서는 수묵화 운동을 주도했던 80년대 초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언덕’은 먹의 번짐과 변화로 일상 풍경을 표현한 작품이다. ‘동아미술제’에서 동아미술상을 수상한 작품과 유사한 경향을 띄며 국내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수묵의 물성과 필묵의 사용을 새롭게 탐색한 실험적 시도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 화백은 “전통적으로 그려왔던 산수를 다르게 형상화하거나, 살고 있는 주변의 모학산 일대 자연을 인간의 삶과 대비해 표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면서도 “80년대 이후 이념대립과 갈등을 회복과 연대의 가치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작품도 있다”고 부연했다.

2부 ‘또 다른 자연’에서는 ‘도시’라는 작품이 이목을 끈다. “도시를 기존의 관념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사유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인간이 변하는 것처럼 자연도 변하고 도시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한편 자연과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상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곧 재료의 변화도 수반된다. 먹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먹은 부드럽고 정서적이며 자연적이지만 기본적으로 먹이라는 물질의 특질을 갖고 있어요. 물질로서 수묵을 이해하고 고유의 물성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방향성을 뒀죠. 그러한 토대 위에서 수묵이 다양한 재료에 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예컨대 화선지(종이)가 아닌 천이나 캔버스에 그리는 것도 여기에 해당되지요.”

그는 여전히 좋은 그림, 좋은 작품을 그리고 싶다. 이번 수상과 전시가 그러한 창작활동을 하는 동력이 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우리 전통문화가 도외시되고 축소되는 면이 있다”면서 “그럼에도 젊은 청년들이 우리의 고유성을 인식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는 창작활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이 화백은 강조했다.

한편 이날 개막식에서는 허백련미술상 2025 수상작가 2인(본상 장진원, 특별상 임노식)에 대한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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