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서 있는 인간의 초상
문인화가 허귀령 10월 12일까지 드영미술관서 ‘시간의 선물’전
2025년 09월 13일(토) 20:10
‘연, 시간의 선물’
‘파초, 여름으로의 초대’
연과 파초는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서 있는 인간의 초상.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더러 인간의 삶에 비유된다. 작가는 자연을 매개로 자신을, 나아가 인간의 보편적 양상을 그려낸다.

사유와 여백, 먹의 번짐과 스밈을 창작의 주요 기제로 삼는 문인화에서 자연은 더더욱 주요 오브제일 수밖에 없다. 자연이 상정하는 의미와 기호 등은 다채로운 해석과 공유의 장이 된다.

‘시간의 선물’을 주제로 첫 번째 전시를 여는 문인화가 허귀령.

허 작가는 13일 개막해 오는 10월 12일까지 동구 드영미술관(관장 김도영)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지난 십 수 년 간 작업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로, 대표 소재인 연(蓮)과 파초(芭蕉)를 그린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작품 속 연방죽과 파초밭은 전통 문인화 형식과는 다른 시각적 언어로 구현돼 있다. 사생과 형상을 넘어 관념과 의경(意境)의 어우러짐을 특유의 붓질로 형상화 한 것이다. 작품들은 단순한 자연의 표현을 넘어 인간의 삶이 투영돼 있어 깊은 울림을 준다. 한편으로 연과 파초는 시난고난한 삶의 무게를 감내하며 서 있는 외로운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연, 시간의 선물’은 빛나던 푸르른 시절을 지나 생의 막바지에 다른 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멸의 시간으로 접어드는 과정을 작가는 ‘시간의 선물’로 규정했다. 생로병사라는 엄정한 순환의 법칙을 따르는 연의 모습에서 인간 삶의 유한함과 처연함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허 작가는 “시들어가는 자연의 모습이 마치 공연이 끝나 객석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공허함 같은 느낌을 환기할지라도 거기에 담긴 인내와 사랑의 시간을 담아내고 싶었다”며 “작품을 통해 우리 주변의 자연 풍광이 던지는 삶의 의미를 다양한 시각에서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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