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특권이 아니다 -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5년 09월 09일(화) 00:00
지난 2001년에 설치된 국가인권위원회가 요즘처럼 세간의 구설(口舌)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부정적인 맥락에서 말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각 국가별로 독립된 인권보장기구의 설치를 골간으로 하는 파리원칙을 UN총회에서 결의하고서 설치된 기구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번듯한 인권위원회 또는 덴마크나 독일처럼 이보다 규모가 작은 인권센터일 수도 있다. 인권의 잠재적이고 유력한 침해 주체가 바로 국가 내지는 공권력이기 때문에 ‘국가(권력)로부터 독립성’이 특히 강조된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그간 통용되어온 보편적인 인권의 문법이 적용된다.

1215년 영국에서 존(John) 왕의 폭정에 맞선 투쟁에서 귀족들이 승리하고서 템즈 강변의 러미니드 평원에서 체결된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는 모든 영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문서가 아니었다. 이 문서에는 ‘자유민(自由民)’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영주와 귀족들만이 자유민이었다. 이로써 당시에 자유는 특권과 동의어였다. 그렇지만 이 문건은 이후로 억압적인 체제에 맞서서 모든 시민이 자유민으로서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었기에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갖는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도 각종의 부당한 차별과 인권 침해가 여전하다. 이들이 겪고 있는 고충에는 아랑곳없이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과 내란재판 국면에서 참으로 황당하게도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을 결의했었다. 그리고 정치권과 일부 지지자들은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 부부의 인권 침해를 주장하고 있다. 과밀수용된 비좁은 혼거방에서, 특히나 무더운 여름철의 고된 징역살이는 오래전에 고(故) 신영복 선생이 쓰신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절절히 묘사되었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그런데도 그 후로 수십 년 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대통령 부부가 수감되자마자 인권 침해 타령이 이어진다. 혼거방의 옆 재소자들이 섭씨 37도의 열덩어리로 느껴지지 않는 독방 배정에다가 잦은 변호인 접견 등의 특혜를 누리는데도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란혐의로 기소된 대통령의 인권을 옹호하는 어느 인권위원은 지난해에 “인권은 인간에게 보장되는 것이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는 막말을 내뱉기도 했다. 인권의 문법을 파괴하는 매우 우려스런 발언인데, 문제는 인간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의 구별에 놓여있다. 15세기 이후의 대항해시대에 신대륙이 발견되고서 이들 신대륙의 원주민, 즉 인디오들이 당시 유럽인들처럼 이성을 갖춘 인간인가를 두고서 논쟁이 불거졌는데, 유명한 ‘바야돌리드 논쟁’이 바로 그러했다. 이들 인디오가 인간이라고 인정되자, 곧바로 아프리카의 흑인들에게로 눈길을 돌려서 한동안 노예사업이 번창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그렇듯이 인권은 지위의 고하, 인종이나 민족, 남녀노소나 범죄 여부를 막론하고서 모든 인간에게 보장되는 것이다. 심지어 흉악범조차도 어쨌든 인권의 주체이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권 보장에 있어서 대전제이고 인권의 기본 문법이다. 즉 국가 또는 그 누구에게라도 이를 구별 짓는 권한을 없앤 것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보장되는 바로 그 이유이다.

한때 아시아권에서 가장 모범적이라며 상찬을 받았던 인권위원회가 보이는 작금의 퇴행적인 모습에 몹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 극우성향이 논란된 야당 추천 몫 후보자들의 인권위원 선출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었다. 인권감수성도 물론이지만, 적어도 인권의 기본 문법을 잘 알고 이를 존중하는 인물들로 인권위원회가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국가인권위원회가 그간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인 보다 낮은 곳으로 따뜻한 눈길을 돌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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