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수박, 400년의 우직함이 전하는 메시지-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5년 09월 05일(금) 00:00
올해 수박 값이 너무 비싸서 많이 먹지 못했다는 넋두리를 하며 그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문득 무등산 수박이 떠올랐다. 오래전 서울에 있는 지인에게 선물을 보낸다며 구입하신 목사님 덕에 직접 본적도 있고 맛도 보았었다. 무등산 수박을 말할 것 같으면 흔한 줄무늬 하나 없이 둥그스름한 이 거대한 수박은 겉모습부터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반 수박의 두세 배에 달하는 묵직한 크기, 밋밋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오히려 원시적이고 맑은 단맛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성인병과 당뇨에 좋다는 효능 덕분에 무등산 수박은 ‘광주의 자부심’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요즘은 당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껍질은 종잇장처럼 얇게 만든 수박들이 넘쳐난다. 달고 먹기 편하다는 장점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지만, 무등산 수박은 그런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다. 400년 가까이 오직 무등산 해발 300m 이상, 특정 경사지에서만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고집스러운 존재다. 나는 이러한 무등산 수박의 우직함 속에서 기독교인의 신앙과 교회의 역사를 발견하곤 한다.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는 과연 무등산 수박처럼 고유한 향과 맛을 내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세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등산 수박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심으면 그 고유한 특성을 잃듯,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세상의 가치에 휩쓸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같다고 말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 (마태복음 5:13)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세상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우리의 고유한 ‘맛’과 ‘향’은 바로 사랑과 겸손,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삶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 고유함을 지킬 힘을 가지고 있다.

무등산 수박은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고유한 맛을 지켜왔다. 이는 마치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핍박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이어온 기독교의 역사와 닮아 있다. 때로는 로마의 박해 속에서, 때로는 이단의 공격 속에서, 때로는 세속화의 유혹 속에서 기독교는 그 본질을 지키려 애써왔다.

세상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쉬운 길을 택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면서도 그 변화가 본질을 잃는 변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거나 마치 육지 속의 섬처럼 고립되어 시대착오적인 모습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실천과 이웃 섬김과 같은 본질적인 가치를 더욱 깊이 추구하며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종교 공동체가 사회의 다양한 필요에 귀 기울이고,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밀며, 공의를 실천할 때 비로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무등산 수박이 희귀성과 뛰어난 품질로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듯,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종교 공동체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긍정적인 가치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작은 선행과 진실한 삶은 마치 무등산 수박의 은은한 향처럼 세상에 퍼져나갈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사랑과 섬김, 나눔과 희생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다. 무등산 수박이 고유의 맛과 향을 지키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듯, 우리의 작은 섬김과 진실한 삶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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